하성면 가금리 102번지 장만(명조21년~인조7년)선생 사당(지방유형문화재 142호)을 찾아가는 길은 낯설었다. 가금리 동네 초입에서는 군인들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며 방문 목적을 점검했다. 휴전선 접경마을인 것이다. 

3,4백년전 조상들은 서해를 건너와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외세의 침입에 맞서기위해 강변에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민족의 한서린 전쟁 역사 현장인 한강 인접마을에 모신 조상의 사당을 찾아가는 일행을 막는것은 이제 우리군이다. 혹시 있을 불손세력으로부터 동네를 보호하려는 행위로 이해해야 할터다. 

장만 선생의 사당이 있는 가금리 동네 입구엔 육안으로도 수 백년생으로 추정되는 잘생긴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듯 당당했다. 13세손인 장근표(31년생, 가금리)씨가 미리 나와 일행을 맞고 음료를 대접한 후, 문무는 물론 덕을 갖춰 많은 사람들이 따랐으며, 특히 지략이 뛰어나 이괄의난을 평정한 공으로 옥성부원군에 오르기까지의 선생 일대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들려줬다. 사당엔 이괄의 난으로 장애를 입은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장만 선생의 영정 복사본과 장애를 입기전인  임진왜란 당시 전공을 인정해 선조가 하사한 금부채를 들고 있는 영정 복사본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본디, 장님으로 소개된 일부 기록이 오기임을 입증하는 자료였다. 장만선생은 유고로 낙서집洛西集을 남겼다.                

다음은 앞서 월곶 성동리 문수산성 북문 앞 갑곶나루 석축로을 쌓은 분으로 알려진 조선조 개국 공신인 박신 선생의 묘지.

잘 손질된 봉긋한 봉분을 보니 비스듬히 몸을 뉘고 하늘을 마주하고 싶었다. 마른풀 향기가 잠시 어린시절로 인도했다. 작은 시골 마을의 묘지는 아이들의 맞춤한 놀이터였다. 철따라 피고지던 무덤가의 풀꽃과 나무들도 친구였다. 그렇게 먼저 돌아간 이와 후세들은 가깝고 친했다. 흙에 기대 살던 시절은......   

박신 선생의 묘는 직육면체로 다듬어진 사각형 기단석을 사각으로 둘러 형태가 여느 묘와 다랐다. 또한 비문에는 두 명의 아내와 합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그 뒷 얘기도 궁금했다.

묘지 입구엔 시 보호수 40호로 지정된 400년 수령의 향나무(학목이라 불린다)빛이 주변을 압도했다. 나무 옆에 방치된 콘테이너 박스가 거슬렸지만, 유배중에도 후학 양성에 전념한 선생의 자태를 보는 듯 들숨이 깊어졌다. 선생은 땅과 강에 기대사는 민초들의 강팍한 삶의 질을 위해 애민한 분이라는 순정한 믿음까지 생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봐도 탄성이 절로나는 그처럼 멋스런 나루터를 구상하고 사비를 투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생의 고고한 품성을 닮은 듯 귀티어린 향나무가 학목이라는 애칭을 얻었다는 설명을 듣고나니 향그런 선비의 성정을 닮은듯 싶었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사람 발길 뜸하고 을씨년스런 유적들로 찡그린 가슴이 쫙 펴지는 느낌이었다. 

가금리를 빠져나와 한강 제방도로와 만나는 전류리. 여흥민씨 정려각과 전류정 터를 찾아 전류 나루터가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언덕을 올랐다. 몇 년전 한강제방도로 확장을 목적으로 설계된 터널방식의 도로개설 계획을 민씨 문중이 문화재 훼손을 이유로 강력 반대했던 기억이 났다.

민성(1586년 선조19년 하성 봉성리 출생)은 1636년 병자호란(인조15년)을 피해 종묘사직 신주를 받들고 왕가를 인도해 강화로 피난한 윤방, 김상용과 합류해 '의족단'을 조직해 청군과 싸우다 강화성이 함락되자, 적군에 포로가되길 거부하고 정족산 전등사 아래 토굴에서 가족13명과 함께 자결함으로 충절을 지켰다. 이후 인조는 민가네 12정려와 충신을 기려 정성자문을 하사했고, 정조는 1790년(정조14년)에 충민공 시호를 내려 강화 충렬사에서 배향토록 명했다. 후손들은 이곳 정려각에서도 제를 지낸다.

유지만 선생님은 " 당시 전류정에서는 통진골의 많은 선비들이 모여 시문를 짓고 시국을 논했을 것이나 정자는 불타서 없어지고 기와편만 남아있다. 임금이 내린 이름의 정자는 흔치 않으니 복원돼 충의를 가르치는 교육장소로, 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김포의 명소로 복원되길 희망했다.    

*"아빠엄마랑 꼭 다시 가볼 거에요."    

한강과 염하가 삼태기모양으로 감싼 김포땅은 긴 역사속 많은 외침를 방어하던 격전지로, 임금이 있는 한양을 수호하는 변방으로 전쟁 기록과 연결된 지사들의 충의어린 유물과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열살 안팍 어린 아이들과 유적에 묻힌 선조들의 숨결을 더듬는 참 뜻은 무엇인가?
 보존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의 접근을 막는 유적과 유물들은 사람의 발길에서 멀어지면서 흉물로 때론 애물단지로 전락해가는 것을 확인시키는 자리가 아니길 바랐다.

 감암포에서 한 아이에게 의례적으로 물었다.
"오늘 답사 어땠니?" "아빠엄마랑 꼭 다시 가볼 거에요." "정말?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제가 먼저 봤고 이게(답사지 안내책자)있으까,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조상들의 애국충혼이 깃든 역사의 현장을 재조명하고 오늘 사는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직계 후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인게다. 피땀으로 지키고 가꿔온 산하. 아는만큼 보고 느끼는 것 아닌가? 좋은 사람들과 같이 꼭 다시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통한 것을 확인한 것이 오늘 답사의 큰 소득이다.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