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도서관 문화의집을 통해 모인 초등학교 꼬맹이 16명으로 구성된 '우리고장 문화유적 답사팀'과 한 달만인 지난 27일 다시 만났다.

이날은 하성면과 월곶면 일대에 흩어진 향토유적지 답사가 목적. 일정은 월곶면 성동리 문수산성 북문을 출발해 ~ 문수사 ~ 갑곶나루터 ~ 통진향교 ~ 군하리 비군 ~ 남산봉수대 ~ 장만선생 사당 ~ 박신의 묘~ 민성일가 정려각과 전류정터 ~ 감암포로 짜여졌다. 안내는 지난달에 이어 유지만 전문화원장이 맡았다.

진초록 젊음으로 웅성이던 여름 들판이 어느샌가 맑은 가을 빛을 깊게 들이쉬며 단맛을 고르는듯 차분하다. 가히 크고 높고 환한 것들에 질린 도시인들의 심신을 다독이는 넉넉한 풍경이다.  

일행을 태운 차가 멈춘 곳은 월곶면 성동리 문수산성 북문.  입추와 처서를 지나온 삽상한 바람결이 아이들의 머리칼을 달싹이며 지나간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죠?" 문화의집 기획위원인 유영주 선생님이 동의를 구했다. 지난번 답사 후 먹은 더위로 몸져 누운 경험을 공유한 때문이다. 

문수산성은 1694년(조선 숙종20년) 서해와 염하를 건너오는 외적 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성으로 당초 6km 정도의 길이로 기록돼있으나 여러차례 복원을 거쳐 4km정도만 남아있는 상태라는 설명을 들었다.

3백여년전 이땅의 민초들은 강화를 통과해 들어오는 외적을 막아내기 위해 이 성을 쌓는 일에 부역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가 성을 쌓는 일에 동원돼 완성된 성"이라고 설명해도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성곽외에 그 노동의 세월과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울게다.

"성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어?"
"저 돌들이 무겁잖아요. 멋있어요. 아무생각 안들어요" 소풍나온 눈빛의 아이들에게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잘 다듬어진 대리석 성돌들을 다시 쌓아올리는 일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고개를 끄덕일까?.

염하를 낀 강화와 김포 양편 강언덕엔 긴 세월동안 외세에 대항한 협공 격전지로 기록된 수 많은 '곶'과 '보'가 유적으로 남아서 외침의 들머리였음을 입증한다.

그림으로 눈에 익은 모양의 근사한 형태의 성문 누각에서 지척인 염하를 내려다보며,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의 해전 장면을 상기해보는 것으로 당시의 전쟁 상황을 유추해보는 일천한 역사 지식이 아이들과 다를바 없다. 내심 부끄럽다. 

다음 코스는 문수사. 문수산 정상 부근에 있는 문수사엔 신라 공혜왕 때 널리 불교를 전파한것으로 전해지는 지방유형문화재 91호 풍담대사 부도탑이 있다고 했지만, 일정상 현지답사는 다음으로 미뤘다. 대신 무형문화재 50호 범패(절에서 재를 올릴 때 쓰이는 불교의식 음악)보유자인 벽응 장태남 대종사(천태종)가 2000년 11월 입적할 때까지 기거하신 등산로 입구의 절집에 들렀다. 범패 전수자인 선우 스님을 만나 벽응 스님 생전에 채록해 둔 범패 녹음을 같이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선우스님마져 2개월전 갑짜기 입적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주인잃은 스산하고 어수선한 절집과 입구에 잘 모신 곱상한 벽응 스님의 사리탑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하루빨리 사람 온기 깃든 절집으로 정돈돼서 출입문을 향해 고운 미소로 합장하고 선 문수보살에 답례하는 이들의 발걸음 이어지길 마음으로 기원했다.            

다음 들른곳은 지방기념물 제108호인 갑곶나루 석축로.
외적이 아닌 강을 건너올지 모르는 북한 간첩의 침입을 막기위해 탄탄하게 둘러치고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는 철조망에 갖힌 갑곶나루터.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몽진하던 고종이 도강거리가 가장 짧고 수심이 얕은 이 지점에서 군사들의 갑옷으로 쌓아 만든 길을 따라 도강한데서 비롯됐다는 지명 유래가 전해진다. 이후 조선초 1419~1432년 사이 김포출신 박신이 축조한것으로 전해지는 석축로는 일제강점기까지 500여년 동안 쓰임새 임무를 다했다.
그러나 일제 독립후 급변한 육로 교통수단에 묻혀 이젠 온갖 영욕의 역사속 수많은 이들의 디딤돌 역할을 접고 강물속 한 점 유물로 묻혔다.

문화재 지정물에 사람의 접근을 막는 문화재보호법을 초월해서 조성된 군 시설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지금은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지만 저기에 40m 길이의 석축로가 있다." 
그림으로 본적있는 석축로를 확인은커녕 사진 촬영과 접근을 금지하는 초소의 군인들과 이방의 언어인양 통하지 않는 대화로 언쟁을 벌여야했다.

 "사진을 찍으면 이 친구가 영창에 갑니다. 신고없이 철조망 5m이내로 접근하면 간첩으로 간주합니다." 북한에서 도강하는 간첩을 잡기위해  김포 반도를 둘러싼 철조망. 우리는 도대체 왜 사진도 찍을 수 없는 저 철조망에 갖힌 유물이 있는 자리를 이 어린 세대에게 가리키는 것인가? 훗날 역사는 이 현장을 또 어떻게 기록할까? 

1969년 개통된 강화대교는 자동차를 동반한 육로개발과 함께 강변의 숱한 나루터와 뱃길을 일거에 폐쇄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다리 공사과정에서 문수산성 외성으로 추정되는 성터 흔적이 발굴됐고, 이 때 출토된 성돌을 갑곶 석축로 이전 복원에 일부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유지만 선생님의 설명이 있었다.

누가 언제 축조했다는 단순한 사실보다, 지금부터 400여년전 조선 세종 때 통진에 유배된 박신이라는 할아버지가 후학을 가르치는 틈틈이 사비를 들여 지금봐도 저렇게 멋스런 나루터를 축조했단다. 완성하는데 무려 13년이나 걸렸데. 서해 바닷물이 넘나드는 곳인데 어떻게 놓았을까? 임금님 사는 한양에선 늘 권력을 잡으려는 신하들이 패싸움을 벌이고 이곳 강화와 김포사이 강을 넘어 자꾸 외적이 쳐들어오던 시절이거든?. 그런데 조상님들 중엔 이렇게 아름답운 예술혼을 발휘하는 분이 있었던 거야. 저 나루에서 강화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사람들은 박신 할아버지의 혼이 담긴 작품을 밟을 수 밖에 없었겠지? 사람들 기분이 어땠을까?.' 자문했다.

"저 나루터 석축을 쌓은 박신 할아버지 묘가 하성면 가금리에 있어. 이따 갈거야" 

일정에 쫒기는 아이들의 뒤를 좇아 헐레벌떡 차에 오르면서 기록 역사속 인물들에 대한 단순한 사실들조차 기억 저편에서 가물거리는 나의 한계를 재확인해야했다. 나는 박신이라는 조상님에 대해 아는 바 전혀 없다. 오늘 비로소 그림에서 본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를 쌓은 할아버지 묘가 하성면에 있다는 그 단순한 기록 하나를 전해들었을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