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꽤 유명해진 이론이지만 ‘Butterfly Effect’라는 게 있습니다.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날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아멜리에>의 오드리 또뚜가 주연을 했던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이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습니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두 남녀가 만나고 그 우연이 수많은 혼란스러운 일들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맺어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제목은 나비효과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거겠지요. 하나의 우연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경우의 수를 거쳐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이루어집니다. 일단 시작된 운명은 그 누구도 그 흐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가서야 그 때의 선택이, 그 순간의 결정이 지금의 이 모습을 만들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삶이란 그런 거니까요.

그렇지만 만약 그 순간,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의 결과가 아니라 또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몇 마디의 말로, 다른 행동으로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그리라고 했더니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을 그리지만 그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친구 집에 놀러가는 날 아침엔 손에 무시무시한 칼을 들고 있는 걸 엄마가 발견하지만 역시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병원에서는 이런 에반의 증상을 낫게 하기 위해서 일기를 쓰도록 합니다.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나중에 돌이켜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에반은 커가면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기억상실증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정든 동네를 떠나면서 에반에게 기억상실증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심리학과 기억상실증에 관해 연구를 하던 중 에반은 자신의 기억상실을 고칠 수도 있는 중요한 무언가를 알게 됩니다.

가끔 사람들은 돌이키고 싶은 순간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돌아가서 다른 선택, 다른 결정을 내리고 싶은 순간을 생각합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지금 이 상황이 아니라 다른 상황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습니다.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서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현재는 달라지겠지만 다른 사람, 그러니까 그 선택에 관련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 적어도 자신이 받아들이는 세계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 역시 그저 조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의 선택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주 작은 움직임이지만 수많은 경우의 수를 거쳐서 폭풍처럼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나비효과>는 어떻게 보면 혼란스러운 영화입니다. 그렇지만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점점 영화에 빠져들게 됩니다. 에반이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순간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야 알게 됩니다. 혼란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면, 그렇지만 그 번복이 이 세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지도 모른다면, 과연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