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이 깊으니 들어가지 마시오.’
관리소장 명의의 팻말이 철망 너머로 보이는 저수지의 모습이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아예 접근도 하지 못하게 철망을 쳐놓았음에도 ‘수심 운운’하면서 물속에 들어가지 말라는 글귀에 쓴웃음이 나옵니다. 굳이 저 글귀가 아니더라도 물에 뛰어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텐데 말입니다.

이곳을 찾을때마다 자주 눈에 띄는 물오리들이나 산새들이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들도 자기의 재충전 공간이 필요한지 어디선가 휴식을 취하고 있나봅니다.

‘저 물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장릉저수지를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산 계곡 어디선가 시작된 실개천이 모이고 모여 원종내외가 잠들어 있는 무덤가를 지날때는 제법 물소리가 귓가에 또렷합니다. 다시 이러한 물줄기는 연잎이 무성한 연못에 와서 잠시 고요함속에 휴식을 취하며 물오리와 대화를 나눕니다.

'우리는 누가 더 행복한거지?'
'인간들이 만들어낸 행복이란 말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그냥 서로의 이 모습 이대로가 좋은데 말이야.' 장릉연못가에서 평생을 나는 물오리와 서해바다까지 흘러내려가는 물방울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려옵니다.

'정착자'에게는 '방랑자'의 자유로움이 부러울 것이고 거꾸로 '방랑자'에게는 '정착자'의 안정감과 평안함'이 부러움의 대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이건간에 삶의 고단함은 어차피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곳을 한바퀴 휘감아 돈 물줄기는 장릉 저수지에 와서 또 한번의 숨고르기를 합니다. 한강과 서해바다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하기 앞서 최종적인 호흡을 가다듬는 곳이 바로 이 장릉 저수지입니다.

장릉연못이 산길 하산의 피로를 푸는 휴식처이기에 아늑함을 안겨주는 곳이라면 그 아래에 놓인 이곳의 저수지는 고난의 대장정을 앞두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긴장감이 넘쳐나는 장소입니다.

인조반정 이후 대왕으로 추존되어 양주에서 이곳으로 이장된 원종의 묘자리를 잡을 때 아마도 가장 고민된 것 중의 하나가 ‘물’의 존재였을 것입니다. 풍수지리의 핵심개념인 ‘배산임수’에 근거해 보았을 때 장릉산과 조화를 이루는 ‘임수’에 걸맞는 강이 이곳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추측에 근거한 것이지만 이곳의 저수지나 그 바로 너머의 연못은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자 인공적으로 조성된 시설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씨가 자신의 잠들자리를 직접 고르며 물이 없음을 보완한다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인공호수를 축조, 저승길 묘자리를 준비했다던 일화가 떠올라 씁쓸함을 던져줍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사후세계 조차 특권과시의 상징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별 차이가 없나 봅니다.

저수지의 물이 흘러내려가는 농수로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물은 계양천을 만나기 까지는 남행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풍무동 어디쯤에선가 계양천과 합류하여 이번에는 그 반대로 한강을 향하여 북행을 할것입니다.

홍도평 인근을 지날때는 그 옛날 걸쭉하게 들리던 농부들의 노동요를 연상할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한강에 합류하게 되면은 이번에는 바다를 향하여 서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저 저수지의 물은 김포를 나선형으로 거의 한바퀴 휘감아 돌며 바다로 향하는 셈입니다.

‘왜 사람들은 물가를 찾는 것일까?’
'그 옛날 아득한 태고적 시대, 생명의 기원이 열리던 장소가 바로 물이었기 때문일까?'
'생명의 근원에 대한 잠재적 본능의 그리움이 물가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잇달아 밀려드는 단상의 자락을 접은 채 장릉산 정상쪽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여전히 미사일 기지는 위압적으로 떡 버티고 서 있지만 신록이 우거진 숲속은 그에 상관없이 자신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듯 합니다.

'언제쯤 저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장릉산 정상이 시민의 품에 돌아 올 날을 그려보며 발길을 다시 옮겨 봅니다.

우저서원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