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 6.25는 슬프거나 무서운 옛날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가족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생이별을 하고 친척 중에 누군가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직접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전후세대에게 6.25는 영화나 이야기로만 존재합니다. 때론 형제가 다른 색깔의 군복을 입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거나,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도
목숨을 걸고 상대방의 목숨을 노리는 이야기에서 전쟁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물론 기억을 더듬어보면 학창시절에 어두컴컴한 학교 강당에서 본
반공영화에서도 전쟁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 본 영화 속에 등장하는 휴전선 너머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살인마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휴전선 너머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휴전선 너머에 있는 곳으로 여행을 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때는 1950년 11월, 한국 전쟁이 한참이던 때, 동화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 동막골에 미군 전투기 한 대가 추락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미군병사를 신기하게 여기며 치료를 해줍니다. 패전을 거듭하며 북으로 후퇴하던 인민군 리수화 일행은 국군의 공격을 받고 깊은 산골로
도망치다 동막골 처녀 여일을 만난 후 마을로 향합니다. 그 무렵 부대에서 탈영한 국군 표현철과 문상상 일행도 동막골에 들어섭니다. 촌장집
마당에서 마주친 국군과 인민군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지만 동막골 사람들은 그런 그들이 무섭기는커녕 왜 그러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국
순박한 동막골 사람들에게 동화된 그들은 서로에게 겨눴던 총을 내려놓고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마을의 창고를 폭탄으로 날려버린 군인들은
동막골 사람들의 겨울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군인이 아닌 농사꾼이 되어서 자신들도 동막골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천하태평인 동막골과는 달리 산
아래에선 동막골에 인민군의 대공포가 있다고 생각한 연합군이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합니다. 공습을 하기 전에 추락한 미군 조종사 스미스를 구출하기
위해 특수부대가 투입되고 마을에 들이닥친 특수부대원들로부터 동막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리수화 일행과 표현철 일행은 동막골을 지키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그동안 한국전쟁에 관한 영화들은 반공영화이거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전쟁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영화였습니다. 물론
<웰컴 투 동막골>역시 전쟁영화지만 전쟁 그 자체보다는 사람에 관한 영화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선 부상당한 동료들을 버리고
후퇴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인민군 리수화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국군인 표현철 역시 피난민들이 건너고 있는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탈영을 하게 됩니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분명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을 인민군과 국군이지만 그들은 동막골에서는 친구가
됩니다. 처음 동막골에서 마주친 국군과 인민군 일행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지만 이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게 되고 동막골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군인이 아닌 사람이 되어갑니다. 다른 일행들이 모두 마음을 여는 동안에도 표현철은 마음을 열지 않지만 동막골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동막골을 지키게 됩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서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눈물을 흘렸다면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들도
공감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서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았다는 건 아닙니다.) 실감나는 전투장면과 눈앞에서 펼쳐지는 액션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웰컴 투 동막골>은 그런 의미에서 전쟁영화이자 전쟁영화가 아닌 영화인 셈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