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을 좋아하거나 공상과학 소설을 즐겨 읽고 SF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요즘 같은 세상엔 지구 어딘가에서 인간복제가 이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을 겁니다.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고 한국 사람이라면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황우석 박사의 연구 결과가 신문의 1면을 차지하는 걸 보면서 인간복제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인간복제에 성공한다면 과연 누가 진짜인간인지, 복제한 인간은 원본(?)인간과 얼마나 똑같을지, 육체의 복제가 정신과 영혼의 복제까지 가능한지 같은 골치 아픈 생각은 뒤로 접어두고 말입니다.

영화는 결국 링컨과 조던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미 광고를 할 때부터 액션영화라고 했으니 뭔가 다른 걸 기대하는 게 욕심인지도 모릅니다. 링컨과 조던이 도망치고 그들을 쫓는 용병들의 추적 장면에선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현란한 영상이 펼쳐집니다. 열다섯 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링컨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탈것을 조종하는 장면에선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감독은 이미 그 전에 친절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복제인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오류가 있었고 그 결과 원래 주인(그러니까 원본인간)의 기억과 능력을 무의식중에 습득하게 됐다고 말입니다. 아무튼, 영화는 링컨과 조던의 손을 들어주고 끝납니다. 그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좀 더 철학적인 문제를 풀어보고자 했다면 영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일랜드>는 두 시간 동안 보고 즐기는 영화입니다. 복제인간을 만들어 내고, 그 복제인간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깨닫고 탈출하고, 그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무지막지한 추격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끝! 복제인간인 링컨과 조던조차도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데 앉아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런 골치 아픈 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잠깐이라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링컨과 조던이 단순한 상품이었는지, 그게 아니라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면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보다 더 무서운 공포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