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당당하게 문제에 맞서 싸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게 대부분일 겁니다.

<우주전쟁>의 주인공 레이도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항구에서 컨테이너 운반을 하는 레이는 이혼남입니다. 주말을 맞아 자신의 두 아이들이 집에 오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깐입니다. 아들 로비는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것조차 피하려 하고 딸 레이첼 역시 오빠만 찾습니다. 일을 하러 나가려고 하던 중에 하늘에서 엄청난 바람과 함께 번개가 치기 시작합니다. 집 근처 교차로 같은 곳에 수십 번의 번개가 치고 무슨 일인지 보러 모인 사람들 앞에서 땅이 갈라지고 엄청난 무언가가 등장합니다. 땅 속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물은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재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려던 주말은 갑작스런 침략자들의 공격으로 지옥으로 변합니다.

<우주전쟁>은 SF영화라기 보다는 재난영화, 혹은 가족영화에 가깝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여전히 훌륭한 볼거리를 보여주지만 영화는 그 자신의 말처럼 스케일이 굉장히 큰 ‘작은 영화’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레이첼에게 땅콩버터를 듬뿍 바른 식빵을 먹으라고 줄 정도로 아이들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부족한 아버지인 레이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두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아이들의 엄마가 있는 보스턴으로 향하는 레이와 아이들의 뒤를 쫓는 영화는 한편으론 로드무비이기도 합니다. <우주전쟁>이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한 상황을 그린 다른 영화들과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우주전쟁>에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노트북을 들고 우주선의 모함에 들어가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과학자도 없고, 조종사들 앞에서 멋진 연설을 하는 대통령도 없습니다. 또한, 엄청난 화력으로 외계인을 제압하는 군대도 없고(물론 <우주전쟁>에도 군대는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외계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입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슈퍼맨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무작정 도망치고 무기력하게 죽어갈 뿐입니다. 애당초 우주인들의 침략은 지구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레이의 아들 로비처럼 외계인에 맞서 싸우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레이와 레이첼이 숨어있던 지하실의 주인인 오길비 역시 외계인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싸우려고 하지만 그의 행동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정신병자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레이에게 오길비는 피해야 할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지만 레이에게는 오직 자신과 아이들의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도 실망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구인들이 한 일이라곤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니는 일밖엔 없는데 다행히 살아남게 된다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맥 빠지는 결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주인의 공격 자체가 지구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 지구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셈입니다. 지구가 멸망하고 인간들이 멸종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운이 좋아서 살아남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결국 지구와 지구인들은 그 어떤 영웅들의 도움도 없이 무사히 살아남게 됩니다. 레이와 아이들이 살아남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