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행진을 보려고 나온 인파는 마치 5백만 뻬떼르부르그 시민이 모두 몰려나온 듯 거리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거리의 간이 화장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10루불을 지불하며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가장 불편한 것이 화장실 사용이었는데 우리나라는 화장실이 참으로 잘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은 저녁을 먹은 후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해 작은 파티를 갖기로 하고 각자 약간의 경비를 갹출하여 네바강의 유람선을 타보기로 했다. 유람선은 1시간 30분동안 네바강을 오르내리는데 4명이 앉을 수 있는 각 테이블에는 보드카 한병과 사과4개 바나나4개가 놓여져 있었고 이 것을 먹으며 네바강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러시아 민속 공연이 실시됐다.

 밤 10시. 네바강에 석양이 걸리고 잔물결이 칠 때마다 반짝이는 물비늘이 일었다. 강변에는 조금이라도 햇볕을 더 쪼이려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몰려 있었으며 그들 중에 연인들은 깊은 입맞춤을 주고 받으며 사랑에 열중하고 있었다.
 
보드카 한잔을 마시고 얼큰한 정신으로 뱃전에 오르니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강변에 늘어선 중세의 도시 모습과 아직 잎을 티지 못한 검은 숲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고 아직도 밝은 빛을 쏟아내는 태양이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6월이면 백야를 체험하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들어 호텔이며 상점이 흥행을 이루고 가격도 배로 뛴다고 했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와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잠을 청했다.

-러시아의 보물 창고 에르미타쥐 박물관
아침이 되자 벌써 마음이 조급했다. 불과 네 밤을 러시아에서 보냈을 뿐인데 집이 그립고 내 나라가 그리웠다. 날씨는 쾌청했다.

일행은 오전 시간동안 쌍뜨뻬떼르부르그를 돌아보기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무역항으로 유명한 뱃머리 등대를 보고 121.8m의 첨탑 꼭대기에 금빛 천사 미가엘 상을 조각하여 올려놓은 베드로 바울 성당을 둘러보았다.

뱃머리 등대에서는 반달곰으로 보이는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나와 입에는 재갈을 물리고 관광객들이 만져 보고 사진을 함께 찍을 수 있도록 한 후 건네주는 돈을 받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버스 통과를 제지하는 경찰에게 뇌물을 주자 통과시키는 비리의 현장도 목격할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싫어하고 가장 부정이 많은 사람을 경찰이라고 한다. 경찰의 한달 봉급이 200불이라니 부정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단다. 그로인해 교통단속은 물론 거리에서도 불법을 목격하면 무조건 적발하고 돈을 뜯으며 특히 외국인은 이유 없이 붙잡아 두다가 돈을 주면 풀어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러시아는 아직 과도기에 머물러 있으며 그만큼 사회 안정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었다.

일행은 1903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함대에 패하여 가까스로 단 한척의 배만 귀환했다가 후에 1917년 혁명당시 이 배에서 왕궁을 향해 함포를 발사하여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순양함 오로라 호를 관람하고 마지막으로 겨울궁전이라 불리는 에르미타쥐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 박물관은 1764년 30여명의 정부를 두고 색을 밝혔다는 에까쩨리나 2세 여제가 서구로부터 226점의 그림을 들여 온 것을 계기로 하여 지금은 300만점의 전시품이 소장되어 있는 세게최고의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금큰 모든 가방이나 점퍼를 벗어 보관소에 맞겨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이는 몇 년 전 한 사내가 염산을 들고 들어가 그림에 끼얹는 바람에 작품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피터 대제가 타고다녔다는 화려한 마차와 황금색으로 기둥을 도색한 무도회장 그리고 초상화의 방을 둘러 왕좌실과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이중 초상화의 방에는 1812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참여한 장군들의 초상을 그려 놓았는데 군데군데 초록색 액자로 비어 있는 것들이 눈에 뗬다. 이는 전쟁에서 사망 했거나 초상화를 그리기 전에 사망한 장군들로서 그리지 못한 채 빈 칸으로 남겨 놓았다는 것이었다.

보석으로 장식된 십자가와 매주 수요일 오후 5시에 날개를 편다는 황금 공작새를 관람하고 세계적 작품들이 걸려 있는 그림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들어가자 ‘돌아 온 탕자’라는 성경을 묘사한 렘블란트의 그림이 있었다. 지난해 독일에서 마치 우리의 귀성 열차표를 예매하듯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인파가 있었는데 바로 렘블란트의 그림전시를 보기 위한 행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유독 관심이 가고 반가웠다.

많은 성경 속의 성화가 가득한 그림을 감상하고 전 세계에 3개중 하나라는 비너스 상을 본 후 이집트 미이라와 석관 등을 관람 한 후 우리는 박물관을 나왔다.

여기에 전시된 작품을 1분씩만 감상해도 수년이 걸린다니 우리는 빙산의 일각도 보지 못하고 나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버스에 올라 생각하니 러시아가 국민소득 3천불의 나라지만 이 나라가 막강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박물관이 있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한 나라이기에 선진국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대한민국으로 저기 김포 반도가 보인다
 박물관을 끝으로 뻬떼르부르그에서의 모든 일정이 막을 내렸다. 일행은 러시아식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간단한 쇼핑을 한 후 공항으로 향했다.

올 때처럼 비가 내렸다. 하늘은 무너질 듯 낮게 내려 앉았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
돌아간다는 것은 떠날 때처럼 또다른 설레임을 가져왔다. 5월임에도 한겨울을 연상케 할 정도로 날이 추웠다. 공항 저멀리 검은 숲과 뻬떼르부르그의 건물들이 보였다.

물과 숲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뻬떼르부르그여 안녕! 우리는 공항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여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환승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일행중 한상순 위원이 버쓰에 중절모를 놓고 내렸다. 가이드와 한 위원을 남겨 둔채 일행은 탑승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도착해서도 힘들었지만 탑승하는데도 짜증이 났다. 공항 요원들은 불친절 했고 세 번을 통과해야 하는 검색절차는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여권과 비행기 표를 검사하는 아가씨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퇴근 시간이라며 업무를 중지한 채 나가 버려 20여분을 기다려야 했고 컴퓨터가 고장나 3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당연한 듯한 표정이었고 사과나 미안해 하는 기색 조차 없었다. 아직도 사회주의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작은 권력이라도 가진자가 대우 받는 미개한 사회구조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밤 9시 20분 드디어 탑승을 하고 대한민국으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은 언제그랬냐는 듯 맑게 개어 있었고 붉게 물든 구름이 여기저기 유영하고 있었다.
9시간의 비행을 위해 쇼파에 머리를 기댔다. 4박 5일간의 러시아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밤 10시 정각 비행기가 이륙했다. 비로소 조국으로 날아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비행기 창문으로 초승달이 하얗게 빛나고 그 아래로 모스크바의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1억5천만의 인구, 한반도의 78배, 그리고 한나라에서 시차가 11시간이 나는 나라 러시아!
세계최고의 발레와 오페라, 문학과 음악과 전 세계 육지의 1/6을 점하고 있는 러시아!
고결, 믿음, 용기를 상징하는 백,청,적의 국기처럼 그렇게 성장하기를 기원하게 됨은 빈부의 격차와 부조리한 관료와 날씨만큼이나 늘 인상을 쓰고 불친절한 그들의 어두운 면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희망이 있어 보였다. 세계 2위의 산유국으로서 새로운 정치 경제 체제와 의식 개혁을 통해 그들은 하면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