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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은 아니지만 '원조교제'라는 말이 이젠 그렇게 낯설지
않습니다. 가끔 신문에 나온 기사제목을 보면서 혀를 차지만 예전처럼 놀라거나 욕을 하지는 않는 게 요즘의 현실입니다. 몇 년 전, '역
원조교제'라는 기사가 신문과 방송을 장식한 일이 있습니다. 30대의 이혼녀가 10대의 남학생과 성관계를 맺고 용돈을 댓가로 여러차례 만나고
심지어 친구의 집으로 도피행각을 벌였다는 기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욕을 하면서 여자를 손가락질
했지만 남자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들이 없었습니다. 여자는 구속됐고 그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습니다.
영화 <녹색의자>는 이제는 잊혀진 역 원조교제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서른 둘의 이혼녀 문희는 우연히 열 아홉의 현을
만나서 섹스를 나눕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단지 현이 법적 미성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문희는 미성년자를 꼬셔서 성희롱한 문란한
여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문희는 화냥년 취급을 받지만 현은 모범생이 재수 없게 이상한 여자한테 걸려서 일을 당한
게 되버립니다. 감옥을 나오는 날, 밖에서 기다리던 현은 문희를 만나서 둘 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현에게 더이상 부담?되고 싶지 않은 문희는
친구인 진의 집으로 떠나고 현은 그런 문희보다 먼저 진의 집에 가서 문희를 기다립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문희와 현은 현실을 피합니다.
성에 관해서 우리 사회가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원조교제를
하다 걸리면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은근히 동정을 하고 오히려 그런 짓을 한 여자애들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들어 대는 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당사자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도덕의 잣대로, 윤리의 잣대로 마음대로 재단하는 게 현실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녹색의자>의 문희와 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은 그저 서로에게 끌려서 사랑했지만 사회는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조사에서 현은 오히려 자신이 더 절실했다고 말하지만 형사는 현에게 '니가 그 여자를 감쌀 이유는 없다'며 현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현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미성년자이고 국가와 사회는 미성년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미성년자들은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한편으론 옳은 소리지만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두고 괴롭히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물론, 문희와 현의 관계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들이 나눈 감정들이 과연 사랑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영화를 본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지칠 때까지 서로의
육체를 탐하지만 정작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습니다. 문희는 현을 떠나 보내야 하지만 자신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현은
하루라도 빨리 법적 미성년이라는 굴레를 벗고 문희와 떳떳하게 사랑을 나누고 싶어합니다. 두 사람의 앞날이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녹색의자>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입니다. 법적 미성년자인 현은 물질적으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 보이고, 문희 역시 별다른 아쉬움 없이 오로지 현과의 사랑에만 열중합니다. 친구인 진의 집은 그들에게 천국과도 같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사랑만
나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문희와 현의 사랑은 절실하다거나 애절해 보이는 게 아니라 그저 순간의 불장난처럼
보였습니다. 어쩌면 윤리와 도덕이라는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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