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면 다수가 민생고, 즉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도시 소시민들에게 희망을 물어본다면 무엇이라고 답할까. 아마 모르긴 해도 다수가 숲이 있고 강이나 바다가 보이고 공해가 없는 지역에 주택이나 별장을 가지고 싶다고 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이나 바다를 전망할 수 있으면 좋은 주택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 값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산은 단순히 우리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산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활력소를 제공해주고 있다. 산에서 자라고 있는 건강한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고 우리 인체가 필요로 하는 산소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피톤치드와 음이온 등 우리 사람에게 매우 유익한 물질들을 공급해주고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은 깨끗한 생수를 만들어내는 정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물은 쉽게 오염되지만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비교적 깨끗하다. 그래서 산속 옹달샘물은 옛날부터 약수라고 하였다. 나는 이같은 연유로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주택을 좋은 주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자리가 아니라고 해도 산과 숲의 가치는 무한하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이같은 주거환경 못지않게 문화, 경제, 교육, 교통 등 중시해야 할 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같은 조건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주거환경 문제는 사람의 생명과 직접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조건보다 중요시 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주택을 평가할 때 얼마나 크게 지었느냐 얼마나 좋은 마감재를 사용하였느냐가 가치판단의 중요한 기준이었지만 이같은 피상적 조건보다는 주택의 품질을 중시하고 그 주택이 위치해 있는 주거환경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잘 가꾸어져 있느냐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997년 8월, 나는 아내와 같이 영국 북쪽 스코틀랜드를 여행한 일이 있다. 그때 나는 에딘버러 대학 기숙사에서 일주일간 기숙을 했는데 대학 기숙사 주변은 오래된 주택가였다. 거기에 있는 주택들은 대부분이 16세기 전후에 지어진 집들이었다. 400여 년의 연륜을 가진 집들이지만 내부를 현대식으로 개조해서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앞으로 500년을 더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이 느껴졌다.

이처럼 시대를 뛰어넘어 그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주택이라면 좋은 주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 주택이 아니라 주거환경이었다. 주택의 규모에 비해 정원이 넓기도 하였지만 그 정원의 고풍스러움과 아름다움은 우리의 고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쏟은 집주인의 정성을 쉽게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집보다 그 집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때묻지 않은 주거환경과 아름다운 정원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발이다 건설이다 해서 마구 부수고 파헤치는데 익숙해져가고 있다. 주택을 짓는데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진작 관심을 가져야할 주거환경에는 행정당국부터가 무관심이다. 그리고 주택을 자동차나 가전제품쯤으로 생각해서 지은 지 10년이 지나면 재건축을 구상한다. 이같은 풍조는 우리 삶의 천박성만 드러내보일 뿐 제한된 자원을 낭비해서 다음 세대의 삶을 곤궁에 빠뜨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는 적어도 100년 앞을 내다보고 지어야 하겠지만 집을 선택할 때도 사람이 살아온 그 집의 역사와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단순히 편리함보다 주거환경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국민의식의 방향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