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의 두 번째 날이 밝았다. 백야와 시차로 인해 많이 피곤 했고 빡빡한 일정 때문에 시민들의 생활상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어제는 거꾸로 게양됐던 태극기가 우리의 지적을 받아들여 똑바로 걸려 있었다. 기분 좋게 일정대로 호텔을 출발하여 러시아의 지하철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철
 일행은 말로만 전해들은 러시아의 지하철을 타보기 위해 역사로 들어섰다. 표를 파는 역사는 약간 비좁은 감이 들었고 불결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표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기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순간 그 깊이에 깜짝 놀랐고 속도에 놀랐다.

지하철 승강장 까지는 130m의 지하로 내려 가야 하는데 까마득한 깊이가 현기증을 느끼게 했고 빠른 속도가 불안한 마음이 들게했다. 승강장은 낡고 어두웠으며 열차역시 낡고 소음이 심했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호텔급 수준이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스탈린의 지시에 의해 1935년에 만들어졌다. 그토록 깊이 뚫은 이유는 모스크바가 습지 지역이라 습지 바닥보다도 더 깊게 설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훗날 핵폭탄이 제조된 후 소련은 이 지하철을 핵 전쟁시 방공호로 활용키로 하여 우리에게는 핵 전쟁을 대비해서 깊게 만든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승강장에 당도하니 마치 작품 전시장에 들어 온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내리며 3개의 승강장을 둘러 보았는데 끼에프 스카역의 승강장엔 과거 소련 시절 직업별 인민들의 노동하는 그림이 수십점 걸려 있었으며 혁명 광장역의 승강장에는 과거 볼세비키 혁명당시 혁명의 주체였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 모습이 수십점 조각되어 있었다. 물론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미술품들이었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러시아인들의 정신이 공산주의 하에서도 또다른 모습으로 표현된 것 같아 부러웠다.

1755년 개교한 모스크바 대학은 크고 우람했다. 교정은 아름다웠고 그로 인해 모스크바의 또다른 관광명소가 되어있었다. 러시아는 초중고 과정이 총 11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중 8년은 의무교육이다. 모든 교육은 대학까지 무상으로 실시되어 공부는 잘하는데 돈이 없어 하지못하는 예는 없다. 국민 소득 3천불의 국가지만 2만불에 달하는 오스트리아나 독일과 다름 없는 교육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대학 입학을 위한 자녀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엄마가 파출부 일까지 해야하는 우리의 현실과 대학에 합격 후에는 많은 등록금 때문에 고통 받아야 하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니 부럽기 한이 없었다.

모스크바 대학을 나오면서 느낀 점은 러시아가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체제를 버린 후 교육이 뒷받침되고 자유가 보장되고 창의력이 발휘되는 이상 그들의 미래는 희망찬 것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미 기초과학의 세계적 선도자이기에 자본주의의 상업정신과 접목 되는 이상 부의 창출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크바 대학을 나와 일행은 모스크바에서 가장높다는 레닌 언덕으로 향했다.
모스크바는 평지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표고83m의 레닌 언덕이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언덕에 오르니 모스크바 대학을 등에지고 앞에는 아름다운 모스크바 강이 흐르고 있었으며 강을 끼고 펼쳐진 모스크바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시내는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솟아오르는 빌딩들이 러시아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 언덕은 시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아베크 족들과 가족단위 그리고 갓 결혼식을 마친 신혼 부부들이 이곳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친구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모스크바는 아름다웠다. 싹을 틔우기 시작한 숲들이 살아 꿈틀 거리고 새들이 모스크바 강에서 숲을 향해 날고 있었다.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의 주경기장 지붕 위로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변덕스런 날씨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레닌 언덕을 내려와 로보데비치 사원이 보이는 호수로 향했다. 이 호수에서 챠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를 작곡했다는데 호수엔 오리 서너마리가 물살을 가르고 있을뿐이다. 세계적 문호 톨스토이가 이 호수를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했다는 설명을 들으며 호수 건너편에 위치한 아름답지만 역사 속에서 피와 음모와 반역으로 얼룩진 로보데비치 사원의 금빛 찬란한 돔을 감상했다.

일행은 점심 식사를 한 후 우리나라의 인사동 골목이라 할 수 있는 아르바트 거리를 둘러 보고 모스크바에서의 일정을 마쳤다.

아르바트 거리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시인‘푸쉬킨’의 생가가 있었다. 푸쉬킨의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거리를 둘러봤다. 거리의 악사도 있었고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도 있었으며 러시아의 전통 공예품들을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상점이 즐비했다.

눈에 띈 것은 개 두 마리를 엎드려 놓고 그 앞에 주인이 앉아 깡통을 놓아두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쩌다 그 통에 지폐를 넣어주고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구걸의 일종인 듯 싶다. 거리를 돌아보는데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가 눈에 띠었다. 상점은 줄을 선 인파로 꽉 차 있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맥도날드라는 말이 실감났다. 건강상 이유로 이미 사양 길에 접어 든 햄버거가 러시아에선 최고의 인기라는 것은 그만큼 러시아의 내로라 하는 음식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그들에게 미국의(자본주의의) 입맛이 파고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평등을 내 세우며 빵 공장에서 생산된 베개빵을 일괄적으로 지급했던 쏘련 체제하에서 먹는 것까지 국가의 통제를 받았던 그들이기에 자유분방한 감자튀김이나 콜라를 곁들인 여타 음식은 새로운 맛이며 새로운 경험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일행은 아르바트 거리를 둘러 본 후 다음 목적지인 ‘쌍뜨 뻬데르부르그’로 가기위해 공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