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악당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폭력에 쓰러지는 것만이 그들의 역할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악당이 있는 곳엔 언제나 정의의 사도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악당보다 조금 더 멋있고 조금 더 능력이 있는 영웅이 나타나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지켜줍니다.

악당과 결투를 벌이고 승리를 자축하며 커다란 저택에서 고상한 집사의 시중을 받으면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의의 사도로 변신을 하기 전에는 평범한 회사원이라던가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어수룩한 모습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위장에 불과합니다. 자기가 영웅이라고 일부러 광고를 하고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요.

방세는 밀려서 쥐새끼처럼 주인 몰래 숨어 다녀야 하는 신세에, 방세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교수업엔 빠져서 낙제를 할 지경입니다. 사랑하는 여자에겐 사랑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고,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유일한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스파이더맨을 증오하고, 그동안 키워준 숙모님은 돈 때문에 정든 집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세탁소에서 스파이더맨의 옷을 빨았더니 속옷과 양말엔 빨간 물이 들어버립니다. 이쯤 되면 영웅은커녕 현실에서조차 구질구질한 인생입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숙부님의 말씀도 그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의 공연에 늦지 않게 가서 꽃다발은 건네는 평범한 청년이 되길 바라는 그에게 누구도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스파이더맨 2>는 그래서 더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무소불위의 영웅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피터 파커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영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스파이더맨은 그 순간부터 더 이상 도시의 건물을 타고 오를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이 그의 능력을 앗아갑니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멋진 영웅보다 방세 걱정을 하는 평범한 청년이 더 매력적인 건 아마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영웅보다는 평범한 청년에 더 가깝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본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스파이더맨 2>는 분명히 본편과는 다른 영화입니다. 본편에서도 스파이더맨은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처럼 멋진 영웅은 아니었지만 속편에서는 좀 더 인간적인 평범한 모습입니다. 영웅의 길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기로 작정을 한 그가 거리에서 불의를 보고도 그냥 돌아서는 장면이야말로 현실 그 자체니까요.

평범한 청년과 악당들을 물리치는 스파이더맨 사이에서 고민하던 피터 파커는 결국 스파이더맨을 선택합니다. 하긴 그래야 진정한 영웅이 될 테니까요.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던가요? 옥토퍼스 박사가 스파이더맨을 불러온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