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었을 겁니다. 주체할 수 없는 무언가의 끌림 때문에 길 위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떠난다는 것의 매력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딘가로 떠나는 순간, 돌아올 곳을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다시 이 곳, 처음으로 떠날 생각을 한 순간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똑같은 장소, 똑같은 순간으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곳, 그 순간이 처음 떠난 곳과 같은 곳, 같은 순간일까요?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바람과 함께 곁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풍경이, 낯선 설레임이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게, 처음과는 다르게 바꿔놓지 않았다면, 과연 그 사람은 여행을 다녀온 걸까요?
 
한 여자가 있습니다. 잡지사에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 여자는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들지 못합니다. 닥치는 대로 먹어대고 술을 마시고 곧바로 모든 것을 토해냅니다. 그리고 잠에 빠져듭니다. 날이 밝아서 깨어나면 똑같은 일상의 반복입니다. 무언가를 먹고, 술을 마시고, 토해내고, 잠에 빠져들고. 그녀의 머리 속에는 끊임없이 말을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 목소리 때문에 그녀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들 수 없습니다. 술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온 여자는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말하는 목소리 때문에 와인을 고르는 것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남자는 여러 일을 전전하다 자기의 트럭을 마련해서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짐을 운반합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이 맘에 들면 자신의 트럭에 태우고 같이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을 떠납니다. 그러다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태우면 그만입니다. 트럭이야말로 남자의 집이자 모든 것입니다. 혼자 운전을 하면서 남자는 무전기를 통해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잘 다니던 식당이 문을 닫은 걸 보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제멋대로 걷는 아이들을 보면 욕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 남자는 곁에 여자가 없었더라도 그렇게 똑같이 중얼거렸을 지도 모릅니다.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여자는 더 이상 자신의 머릿속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남자의 다정한 손길은 느끼면서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여자는 남자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먹은 걸 토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