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는 한 때 점심 식사의 대부분을 직장 가까운 갈비집의 물냉면으로 때우던 추억이 있다. 그 시절, 그 집에 가면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살얼음진 육수에 가늘고 투명하고 쫄깃한  면발위에 초절임 무채와 배, 삶은 계란이 고명으로 올려진 넉넉한 양의 물냉면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의 직장 근처에서는 그 때의 맛에 근접한 냉면 맛집을 찾지 못한다. 갈비집에 가도 불쑥 냉면을 주문하기 일쑤지만 실망 빈도도 잦다.

"냉면집이 새로 오픈했는데 같이 가실래요?" 직장 상사의 제안이 반가웠다. 바야흐로 알싸하게 시원한 맛이 당기는 계절이다.'이번엔 제발......' 

북변동 김포농협 맞은편에 최근 문을 연 '함흥맛냉면'집. 18면 외부 주차장을 갖춘 70평 내부가 시원하고 깔끔하다.

회냉면과 물냉면을 각각 주문하고 식전에 나온 온육수로 속을 데웠다. 냉면 맛의 핵심은 면발과 육수. 이 집은 100% 한우 사태를 우려 육수로 쓴다고 했다.

강원 함흥 쪽 실향민들의 그리움의 상징인 감자. 이 집은 감자 전분을 손 반죽해 적정 온도로 온장고에 숙성해 두고 기계를 이용해 그때 그때 주문량만 뽑는다. 가늘게 뽑힌 면은 바로 끓는 물로 떨어진다. 알맞게 삶아진 면발을 채로 건져 찬물과 얼음물에 번갈아 행궈내면 쫄깃하고 고소한 함흥식 냉면발이 된다. 

그리워한 냉면 맛이 감자 전분을 원료로 쫄깃함을 즐기는 함흥식 냉면이었다는 것도 새삼 알았다. '육수도 면발도 그때 그 맛에 가깝다. 드디어 찾았다.'
 
이 집의 회냉면 고명은 흔히 쓰는 홍어나 간재미회가 아니다. 가시를 발라내 물에 불려 비법 양념에 달콤매콤하게 재워 냉면과 궁합을 맞춘 명태포무침을 쓴다. 함흥식이라서 이북식 가자미 식혜가 얹혀나올 것을 기대한 이들의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가자미 식혜는 따로 낸다.

회냉면은 주인 임화수씨가 강원도 속초의 새 명물로 각광받는 능라면옥 주방에서 1년간 전수한 속초식. 시식하는 방법도 흔히 먹던 비빔회냉면과 좀 다르다. 기호에 따라 육수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찬 육수 담긴 주전자가 따로 나오는데, 회냉면기에 찬 육수를 적당히 부어 명태무침의 양념이 면발에도 고루 배어들도록 섞어 물회처럼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홍어회나 간재미 회냉면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한 맛이지만 "맛 보고 말씀하시래요. 6,7,8월 세 달이면 효부 납니다. 죽음이래요." 브이자를 그리는  이수 실장의 익살스런 강원도 사투리가 수수하고 친근하다. 그는 최근 함흥냉면으로 각광받는 속초 능라면옥에서 파견돼 김포 사람들의 입맛 공략을 지원하고 있다.
 "조금 낯설어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한 번 두 번 먹다가 입에 배면 꼭 다시 찾게 된다"는 주인 임씨의 장담에서도 자부심이 느껴진다.

개업한지 보름됐는데 벌써 연속 3일을 찾아 온 한 손님이 "먹을 수록 당긴다"며 만족해 했다고 전하는 임씨는 "주방의 정성이 깃든 변함 없는 손맛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라는 것에도 동의했다.

15년 전 찬바람 부는 겨울날에도 예약 없이 들어와 늘 물냉면을 시켜먹는 한 여성이 姙婦(임부)임을 짐작한 갈비집 주인 아주머니는 특별히 질 좋은 고기로 맛있는 육수를 냈다. 그런 특별한 배려는 해산 한 참 후에 알았다. 기자의 철(사계)없는 냉면 사랑엔 사람의 배려가 맛으로 배어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재료와 양념을 쓰는 우리의 전통 음식도 지역 구분 없이 평준화 되어가는 추세다. 그래도 대를 이어 손맛을 지켜가는 사람들은 있다. 고향을 떠나 이동하며 사는 사람들이 옛 맛을 재현하고 전파하려 애써도 먹는 이들은 늘 2% 부족감을 말한다. 부족분은 장만하는 이의 특별한 정성과 손맛 자리다.    

* 물냉면 5,000원, 회냉면 6000원.  연중무휴, 신속배달. 전화번호 996-36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