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날 때부터 이미 지니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텐데 그 사람과 헤어날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아마 그 사람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요?

1956년,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미국에서 캠브리지로 유학을 온 아름다운 실비아는 시인이지 문학평론가로 장래가 촉망되던 테드 휴즈를 만나게 되고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서로에게 운명적으로 이끌린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실비아의 고향인 미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행복해 보이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테드를 향한 실비아의 집착과 테드의 자유분방한 생활 방식 때문에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결코 서로를 떠날 수 없음을 깨달은 두 사람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테드는 시인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이름을 날리지만 시인이 되고 싶었던 실비아는 두 아이를 돌보며 생활에 치여 제대로 된 시를 쓰지 못합니다. 그러던 가운데, 실비아는 테드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걸 알게 되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파경에 이르게 됩니다. 테드와 이혼한 후, 실비아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과 이별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면서 그동안 쓰지 못했던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미 갈라선 두 사람이지만 결코 테드를 잊을 수 없었던 실비아는 수십 년 만에 혹한이 찾아온 런던에서 테드와 다시 만나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실비아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 놓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테드는 자전거를 타러가서도 시를 쓰지만 실비아는 시를 쓰려고 해도 빵만 굽게 됩니다. 자신 스스로가 시인이 되고 싶었던 실비아지만 테드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녀는 상처받게 됩니다. 또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그녀는 일생동안자살의 유혹에 시달리게 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엔 ‘그것’에 성공하게 됩니다.

영화 <실비아>는 시인이었던 실비아의 삶 보다는 테드 휴즈의 아내였던 실비아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녀가 자살한 후 출판된 유고시집 <에이리얼(Ariel)>의 주옥같은 시들을 써내려간 시인의 모습은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짧은 시간동안 그녀의 삶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그녀의 시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물론 영화에서도 볼 수는 있습니다. 테드와 이혼한 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동이 틀 때까지 치열하게 시를 쓰는 모습이 잠깐 나옵니다.), 그녀가 평생토록 매달렸던 시에 대한 끝없는 열망은 좀 더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테드 휴즈와 실비아의 삶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테드 휴즈의 두 번째 부인인 애시어 웨빌 역시 실비아처럼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그렇지만 실비아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죽은 반면 애시어는 테드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슈라와 함께 자살을 합니다. 실비아의 자살 이후 테드는 그녀에 대해서 깊은 침묵에 잠깁니다. 실비아의 일기를 출간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을 삭제했다는 비난에 시달리던 테드는 1998년 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실비아와 나눈 사랑에 관한 시집 <생일 편지(Birthday Letters)>를 통해 그녀를 회상합니다.

이제 그들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면서 / 오븐 속에 머리를 처박은, 시체를 / 상상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 땅콩을 주워 먹으면서 / 내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 즐긴 사람들은 / 그녀의 추억을 각자 하나씩 들고 집으로 가겠지 / 생명이 없는 - 기념품 / 아마 그들은 비디오를 살지도 모른다 // 그들은 내가 내 어머니의 말들을 순순히 내놓아야한다고 믿는다 / 그들이 만들어낸 괴물의 주둥아리를 채우기 위해 / 그들의 자살 인형 실비아라는 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