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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입니다. 삶의 기운이 왁자한 이 봄에 죽음을 이야기한다고 하면 요즘말로 '생뚱맞다'고 하겠죠?
하지만 모든 생명은 죽음을 딛고서야 확인됩니다. 살아있는 개체는 반복되는 내부에서의 죽음(세포의 自死·壞死)을 통해 생을 유지합니다. 가만
살펴보면 생명이 모여있는 집단들도 그렇습니다. 각 집단마다는 구성체의 존속을 위한 독특한 죽음의 제의(祭儀)가 있습니다.
죽음은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지극히 당연한 몰가치한 현상입니다만, 죽음에 대해 인간은 슬퍼하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슬퍼하는 것 만큼 죽음의
다른 편에 선 생의 가치를 소중히 하고 '깨어있음'의 자양분이 됨을 추도합니다. 봄은, 긴 겨울 동안의 그만큼의 죽음의 무게를 업고 오길래
그토록 화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쓰다보니 재미없고 진짜 '쌩뚱맞은' 서설이 돼버렸는데요, 죽음과 슬픔을 각기 다르게 노래한 곡들을 소개합니다.
○The Indian Road-Mary Youngblood
外(2002)
미 서부의 골드러시는 이주민들에게 희망의 빛이었다. 그러나 땅의 원주인들에게는 재앙이었다.
1848년의 봄은 인디언들에게 재앙의 시작으로 기록됐다. 40여년 동안 진행된 학살과 약탈의 역사는 '운디드 니'에서 최후까지
저항하던 수우족 3백여명이 전멸하면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2002년에 발매된 <인디언 로드> 3부작은 북미 인디언의 질곡의 수난사를 담고 있다. 매리 영블러드, 카를로스
나카이, 로버트 미라발 등 녹음에 참가한 뮤지션들은 모두 인디언의 후예들이다. 애이불비(哀而不悲)라 했던가. 이들은 잃어버린 땅과
잃어버린 삶을 담담하게 연주한다. 독수리 뼈, 삼나무, 호두나무로 만든 인디언 플륫의 음색은 평원을 가르는 바람소리를 닮았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영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에서 자유가 거세된 맥머피에게 죽음을 선물하고 억압의 벽을
뚫는 브롬덴 추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라이너노트에 적혀있는 싯구가 음악 만큼이나 여운을 남긴다. "너희들 도시의 길은 너무 밝다!
너희는 별이 겁나느냐? 너희 음악 소리는 너무 크다! 너희는 바람의 속삭임이
두려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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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k Gorecki
'Symphony No.3'
-David Zinman & London
Sinfonietta(1992)
현대음악계에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음반이다.
'비가(悲歌)'라는 부제가 붙은 구레츠키의 3번 교향곡은 폴란드 수도원의 구전 기도문, 아우슈비츠 수용소 벽에 새겨져 있는 한 소녀의
독백,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부르는 폴란드 민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영적 미니멀리스트'라는 별칭이 붙은 이 현대음악가는 끊임없이 같은 음을 반복하고 그 반복 속에서 점층되는 슬픔을
형상화했다. 슬픔은 시종일관 'Lento'-느리게- 그려진다. 교향곡이란 형식이 의심될 만큼 '빈약한' 구조임에도 이 곡은 슬픔의
정서를 어떤 곡보다도 호소력있게 전달한다. 93년에 KBS홀에서 실연으로 접했을 때 필자는 '어머니, 울지마세요'라는 2악장의
아리아에서 솟구치는 눈물을 삼켜야했다.
26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슬픔의 노래'는 이 곡을 소재로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가 정찬은 아우슈비츠와 광주를 연관시켜
광기의 시대에 제의로 바쳐진 죽음들에 관해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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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 Faure 'Requiem'
-John Elliot
Gardiner & Orchestre Revolutionnaire et Romantique(1994)
찬란한 죽음. 포레의 진혼곡은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찬가이다. 흙에서 난 자,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움의 예찬이다. 1885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해 작곡했다는 이
곡은 죽음을 평온한 안식으로 이끈다.
카톨릭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규정을 지키면서도 가곡을 연상시킬만큼 간결하고 서정적인 악법을 사용하여 종래의 격정적이고 암울한
레퀴엠의 면모를 일신했다. 많은 이들로부터 이 '죽음의 자장가(Death's Lullaby)'를 장례식에서 틀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게
하는 이유다.
75년 코르보(에라토), 87년 헤레베헤(아르모니아 문디)가 투명하고 고아한 곡의 특질을 잘 표현한 수작 녹음을 남기고
있는데, 보다 정치한 해석, 치밀한 구성이라는 점에서 94년 발매된 가디너와 혁명과낭만 오케스트라(필립스)의 연주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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