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점짜리 시험지 내밀듯 애비 눈치 샐샐 살피며
대학 합격증 내미는 딸년을 보며 고맙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여 아랫배 힘주고 헛기침 한 번 한 후
수고했다고 걱정 말라고 큰소리 땅땅 쳤더니
딸년 두 눈이 반딧불처럼 반짝이고 얼굴이며 어깨며
두 손이 꽃이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되는거예요
돌아서서 괜한 수도꼭지 틀어놓고 설거지하며
내뿜는 아내의 한숨 소리와 그렁거리는 눈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애비가 아니면 뉘라서
딸년 가슴에 고운 꿈 심을 수 있겠어요
내일은 바깥세상 휘휘 돌아 딸년 어깨에
날개 달아 줘야지요
창 밖엔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데 가슴이 눈벌처럼
추우면서도 눈송이처럼 푸근한 거예요 막막하면
서도 행복한 거예요
우린 아무 말 없이 창 밖 함박눈만 함께 보았어요
<입학금> 전문

양시인은 "초상집의 지친 상주를 대신해 곡을 하는 여인처럼 문상객들에게 제 설움 풀게하는 마력을 지닌 우리 시대 가난한 아버지들의 '哭婢(곡비)'"로 최시인의 시 세계를 소개했다.

최 시인은 "언젠가 우리 모두는 그 누군가의 눈 속에 잠든다. 그러나 세상은 가슴으로 말하는데 머리로만 들으려는 불통이 있고, 때로 죽이고 싶다는 분노도 일으킨다. 그래도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되뇌이며 마음 다잡고 되도록 선하게 살고자 시를 쓴다"고 답사했다.

최시인은 "누군가 묻는다면 가슴에 응어리진, 용솟음치는, 살아나는 감정을 시라고 하겠다. 첫 시집 출간 때 울던 아내가 독해진 것도 시제가 된다. 진실이고, 사랑이고 삶 자체인 시를 사랑한다. 세상 끝까지 가장 큰 슬픔을 가장 큰 기쁨이게 하는 시인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그 눈속에 잠들다>는 1999년 처녀시집 <문득 그대 그리운 날>,  2002년 2집 <내게 머문 눈빛만으로> 에 이은 세번째 시집이다. 출간 기념회는 29일 농업기술센터 강당에서 유정복 국회의원, 이용준 시의회의장, 조한승 문화원장 외 김포강화 지역 예술문화인과 최시인을 아끼는 200여 지인들의 축하 속에 치러졌다.

54년 강화에서 출생, 계간 '시인정신'을 통해 등단한 최 시인은 (사)민족문학작가협회 회원으로 강화문학회와 통진문학회를 이끌고 있다. 경기신문사 현역 기자로 활동하며 늦깍이 문학도들의 시심에 불씨를 당기고 열정을 일깨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