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 후문,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길은 단절되어 있습니다.
존재하기는 하나 걸을 수 없는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닙니다. 박제 처리된 생명체처럼 창살너머의 숲길은 저 멀리서 슬픈 몸짓으로 누워 있습니다.

‘전주이씨 한 가문을 위해 우리의 수십년 된 생활권이 단절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언젠가 인터넷 게시판에 한 시민이 올렸던 글이 떠오릅니다.
그분의 말씀처럼 장릉을 전주이씨 한 가문의 문화재로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십년간 풍무동에서 사우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길을 제공하며 주민들과 삶의 한자락을 함께하던 길이 단절된 후 주민들의 답답증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길은 소통의 상징입니다.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자가 바로 길입니다.

또한 길은 등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다’

예수가 설파한 성경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어떤 길을 바라보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많은 변모를 겪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길은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뛰어넘는 철학과 인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길 앞에 서면은  바쁘지가 않습니다. 

운치와 여유가 느껴집니다. 이 길을 지나간 이들의 삶의 궤적이 그려지며 상상력의 공간에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느낍니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러한 숲길이 있다는 것은 분명 주민들에게 삶의 축복일 것입니다.
시청건물 앞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축복의 땅 김포’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 장릉 숲길을 걸을 때 느꼈던 풍요로움은 분명 ‘축복’의 기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느낌은 기억 저편의 상상력의 한 자락으로서 자리 잡을 뿐입니다.

근대화의 물결이 밀어닥친 후부터는 길보다는 도로라는 말이 자주 익숙해지고 2차로, 4차로, 8차로 등의 말에 덧붙여 공간과 속도의 개념으로 한정되어 버렸습니다. 

도로는 곳곳의 육지를 섬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섬은 바다에만 있는게 아니라 육지에도 존재한다는 말을 옛 선인들이 듣는다면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굳이 고속도로가 아니더라도 국도가 지나간 이편과 저편은 생활권이 갈라지고 동물들의 이동통로가 차단되어 버립니다. 도로 곳곳에 나뒹굴고 있는 개나 고양이의 시신은 길을 빼앗겨버린 버린 자연의 절규인지도 모릅니다.

장릉숲길이 막혀버린 후 사람들은 철망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숲길을 열어달라고 수없이 외치지만 문화재청을 비롯한 관계당국은 묵묵무답일 뿐입니다. 얼마전에야 시청과 문화재당국이 철망담벼락을 따라 새로운 길을 조성할 계획임을 신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장릉산 정상을 미사일 기지에 빼앗겨 버리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숲길마저 접근을 금지당했음에도 사람들은 그래도 그 주변을 부지런히 맴돌고 있습니다.

현재의 단절이 그 누구도 아니 인간자신에 의해 초래된  결과임을 반성하면서 탑돌이를 하듯 장릉산 주변을 계속 돌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장릉산이 시민의 품에 온전히 돌아오려면 전 시민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장릉산 일대를 돌며 삼보일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장릉산은 돌고도는 거대한 물레방아입니다. 저 물레방아를 온전히 돌리려면 좀 더 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이 필요할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탐욕과 갈등이 씻겨지고 자연과 화해하는 날 비로소 장릉숲길의 문이 열릴것입니다.

장릉숲을 닫아버린 자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 자신임을 반성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