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더불어 설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다.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에서 온 말로 조심한다는 뜻이라고도 하고 또 미완성의 한해를 또 보냈다는 아쉬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섧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설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몸과 의관을 정결히 한 다음 돌아가신 조상들에 드리는 제사(祭祀) 반례(返禮)는 종교적 행사 못지 않게 엄숙하다.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어른들께는 용돈을 드리고, 아이들에게는 세배 돈을 줌으로써 조손(祖孫) 간의 천륜을 돋운다. 그런 후에 동네의 나이 많은 어른들부터 차례로 세배를 드리고 장수를 빌면서 주민간의 유대를 강화시키고 질서를 세운다. 이것이 세시풍속이다.

이제 농촌은 더이상 생기 넘치는 삶의 터전도, 중심도 아니다. 젊은이들은 생업을 따라 외지산업현장으로, 해외로 떠났다. 텅 빈 농촌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멎은 지 오래되었다. 부모와 자식, 젊은이와 늙은이, 고향과 타향이 갈라졌다.

지금 농촌에는 동란 후 산업화를 지나며 기구하게 살아온 세대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은 나라를 재건하고 근대화에 앞장선 역군이었으며 논밭을 팔아 교육입국을 실현한 애국의 세대들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경쟁력 없는 농촌, 유배지와 같은 삶 뿐이다.

정신적, 물질적 공황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이 세대가 누렸던 전통, 정신, 사상의 몰락은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한다.

세계에서 11번째 무역 대국이 되고 국민소득이 만불이 넘어도 역시 농촌은 사각의 지역이다. 복지혜택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상대적 박탈감 만이 아니다. FTA 체결로 인한 앞으로 더 절대적 빈곤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정책의 불균형 문제이다.

이제 국가는 이 세대들의 정신적, 물질적 복지에 눈을 돌려야 한다. 시대적 운명으로 간과하기에 이들은 너무 억울하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세상 어디에 가든 잊을 수 없다. 피폐한 농촌, 헤어져 살아야 하는 부모를 생각하면 고향 쪽만 바라보아도 왈칵 눈물이 솟는다.

이번 설은 한 땅에 살면서 부모와 자식간 세대의 벽을 다소나마 허물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상기하면서 농촌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