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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혼합'은 이젠 꽤 진부한 주제입니다. 철학도 그렇고 문화,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엊그제 위성 TV를 보니 사물놀이패와 록기타리스트가 한무대에서 연주를 하던데 사물을 억지로 멜로디화한 기타 애드립이 앞서 나가고 꽹과리와
징, 그저 북은 장단으로 뒤를 맞추고 있더군요. 늘 같은 형식에 식상했습니다.
썩 어울린다는 민속음악과 재즈의 궁합도 대개는 민속은 없어지고 난해한 재즈의 프리 형식만 남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입히기 정도에 그치는 '크로스오버'의 옥석을 가리기는 참 어렵습니다. 뭐 굳이 '실험적'이라는 미사여구를 붙인다면 아직도 시도했다는
자체로 박수를 쳐줄만 합니다만…
그 중에서 시의적절하게 새로운 실험에 성공한 세 연주자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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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정(Ray Jung) -정읍사(Jung Eup Sa)
2002
'한국적 뉴에이지(New Age)', '네오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명명되는 레이 정의 데뷰 앨범 <Memory Of The Day>의 수록곡. 백제 가요
'정읍사(井邑詞)'를 주제로 했다.
행상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아내의 애절한 기도에서 모티프를 따왔다고 한다. 대나무 숲 사진을 담은 재킷의 인상인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애절하다기 보다 소슬하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파리 국립 음악원에서 수학한 정통파답게 감성에만 치우치지 않고 곡 전개가 논리적이고 치밀하다는 인상을 준다. 에튜드 형식의
실로폰과 바이올린 연주는 한국적 정서를 아름답게 되살려내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두번째 앨범 <Spirit Land>에서는 중국의 시성 두보의 춘망(春望) 중 유명한 절구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를 인용해 동양의 도교 사상에까지 음의 텍스트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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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언(Ryo Kunihiko) -Prince of Cheju
1999
제일교포 음악가. 일본의과대학을 졸업한 전직
의사로 심리학 박사 출신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야니(Yanni)와 흔히 비교된다. 20여종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만능 세션맨.
'제주의 왕자'는 세번째 앨범 <Only Heaven Knows>에 수록돼 있다. 처음 아버지의 고향 제주에 갔다가
영감을 얻어 쓴 곡이라고 한다. 오케스트레이션을 배경으로 한 태평소의 선율이 제주의 바람처럼 시원하다. 장고 연주는 타악 그룹
'푸리'의 원일이 담당했다.
지난해 발매된 <Echoes>까지 다섯개의 작품을 낸 양방언의 음악세계는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과감하게 포기했을
때처럼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전 장르를 넘나들며 세계 각곳의 민속음악에 시선을 두고 있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뿌리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임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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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Garbarek -Officium
1994
재즈의 본류가 유럽으로 흐르던 70년대에
오슬로 무브먼트를 주도했던 이 지적인 색소포니스트는 시공을 뛰어넘어 중세의 오라토리움과 현대 재즈를 접목하는 시도에 성공했다.
뒤파이부터 페로탱, 모랄레스에 이르기까지 탈속의 염원이 담긴 성가에 절규하듯, 신음하듯, 허공에 채색되는 그의 색소폰 연주는
거부하기 힘든 충격을 준다. 오피시움은 '마이 송(My Song)'에서 따뜻하고 감미로운 연주를 들려준 동일인이라고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엄숙하고 구도적이다.
"소리의 여백을 알게 됐다"고 밝힌 어느 인터뷰에서처럼 그의 음악은 동양의 선(禪)에서 새로운 접점을 찾은게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갸바렉의 시도는 전문 보컬 앙상블 힐리어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90년대 이후 그는 파키스탄, 인도, 티벳의 민속음악을 천착하고 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 그와 우리 국악과의 조우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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