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과 비슷하게 시간을 보내고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쳐버린 순간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결코 그 순간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엘리펀트>를 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운 순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깨닫지 못하지만 그들의 등 뒤를 따라가는 카메라에 비쳐지는 풍경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 때문에 학교에 지각을 한 존이 혼자 눈물을 흘리는 순간조차도 아름답습니다.

사진에 취미가 있는 일라이가 공원에서 펑크족 연인의 사진을 찍는 순간도, 학교 복도에서 마주친 존의 사진을 찍어주는 순간도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소심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미셸이 운동장에 잠깐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도, 치어리더인 브리타니, 조던, 니콜이 잘생긴 운동선수 네이트를 쳐다보며 호들갑을 떠는 순간도, 게이와 동성연애에 대해서 아이들이 토론을 하는 순간도,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그래서 슬퍼 보이는 풍경입니다.

<엘리펀트>에서 카메라는 그저 주인공들의 뒤를 쫓아갈 뿐입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기만 할 따름입니다. 각자의 순간을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타인의 시간과 겹쳐집니다. 아주 잠깐 스치듯 서로의 삶에 흔적을 남기지만 누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하루라는 일상을 만들어내고 그 일상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엘리펀트>는 아무 것도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알렉스와 에릭이 무엇 때문에 총을 쏘는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알렉스가 집에서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연습하는 동안에 에릭은 사람들의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마치 장난감을 사는 것처럼 인터넷에서 총을 구입하고 창고에서 총을 쏴보는 그들의 모습은 그저 개구쟁이처럼 보입니다. 그들 역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고등학생처럼 보일 뿐입니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평온한 일상이 계속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잠깐씩 마주쳤던 주인공들의 평범한 하루가 어떻게 될지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합니다.

너무도 평온하고 아름답던 일상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하루가 되어버리는 걸 보면서 무엇이 그들의 일상을 빼앗아갔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엘리펀트>는 어떤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그저 조각조각의 일상을 보여줄 따름입니다. 하늘이 아름답던 어느 하루에 벌어진 일들, 조각조각의 평범한 일상이 모여 만들어낸 어느 끔찍한 하루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