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일생을 두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영화 <역도산>은 전후 일본인들의 우상이었던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가난한 ‘조센징 김’은 스모 장사 요코즈나가 되기 위해 선배들의 괴롭힘을 묵묵히 참고 버팁니다. 그렇지만 든든한 후원자가 없이는 요코즈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칸노 회장을 자신의 후원자로 만듭니다.

역도산이라는 이름과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지만 그는 ‘조센짱이라는 신분 때문에 승급심사에서 떨어지게 되고 십여 년 동안 매진했던 스모를 그만두게 됩니다. 술로 세월을 보내던 그는 우연찮게 미국인 프로레슬러를 알게 되고 스모로 성공할 수 없는 자신이 성공할 길은 프로레슬링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으로 향합니다.

북한 출신인 그는 일본에 건너가 스모선수가 되고자 했지만 조선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스모를 포기하고 프로레슬러가 됩니다. 성공한 프로레슬러로 ‘천황 다음에 역도산’이라는 말과 함께 최고의 영웅이 되지만 괴한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게 됩니다.

역도산은 패전 이후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는 희망을 준 최고의 영웅이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이름이 알려진 프로레슬러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영화에서 역도산은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걸 밝히라는 친구의 말에 ‘역도산은 세계인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스스로 세계인을 자처한 그는 결국 죽는 순간까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역도산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실존인물을 다룬 다른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모습이 정의의 사도인 것과는 다르게 역도산은 때로는 악역에 가까워 보입니다. 어쩌면 그런 모습들이야말로 영웅 역도산, 아니 인간 김신락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도산>은 일본인들의 영웅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역도산이 우리에게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 수록 그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역도산>은 영웅 역도산이 아니라 배우 설경구를 위한 영화처럼 보입니다.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늘린 그가 사각의 링 위에서 프로레슬링을 하는 모습은 실제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는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영웅 역도산의 밝은 면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과 어두운 면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설경구이기에 가능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