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귀찮은 불청객이 있다. 그는 서늘한 아침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하루의 시작부터 그 불청객에게 시달리고 나면 생활의 의욕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가끔은 신체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고 또 가끔은 떼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화가 난 적도 있었다.

아주 어려서부터인 것 같다. 나는 유난히 코를 많이 흘렸다. 밖에서 나가 노는 일이 일상이었던 시절, 고무줄 놀이를 하든 숨바꼭질을 하든 눈싸움을 하든 흐르는 콧물이 나의 불청객이었다.

'코흘리개'는 어린 시절의 별명이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저마다 가슴에 달고 나온 세모 네모로 접힌 수건의 용도가 나와 똑같은 코흘리개용이라는 걸 알고 안심했다.

그런데 그 애들은 얼마 안 가 손수건을 떼어냈다. 아이들의 놀림으로 수줍음이 생기자, 처음으로 나는 왜 코를 흘려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코흘리개로 낳아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는 신체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는 아무 장소에 가서도 스스럼없이 코를 풀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계절은 초겨울이었다. 환절기가 되니 재채기와 함께 코흘리기가 시작됐다. 처음엔 감기려니 여기며 안쓰럽게 지켜보던 식구들이 여러 날이 되어도 콧물이 계속되자 빨리 병원에 갈것을 종용했다.

"당신 그 콧물!! 밥이나 반찬에 빠지는 거 아냐?"
"연애할 땐 왜 몰랐지." 코흘리개 아내를 맞이한 것을 뒤늦게 후회하는 듯했다.

임신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젠 낮이고 밤이고 코흘리기가 멈추지 않았다.

밤이면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막힌 쪽으로 드러누우면 반대쪽이 막히고, 쉬지 않고 닦아 내린 코밑은 하얗게 헐어가고 있었다.

괴롭던 날이 이어지자 나는 더 이상 코흘리기를 내 신체의 일부로 여기기를 멈추기로 했다. 유명하다는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나의 기나긴 설명을 들어준 의사는 먼저 검사부터 해 보자고 했다.

주사바늘에 시약을 넣고 팔뚝 곳곳에 찌르고 점점이 퍼지게 했다. 그리고 40여 분을 기다렸다. 그사이 두 군데가 유난히 벌겋게 퍼지고 있었다. 몇 차례 검사를 더 마치고 이제는 의사의 판정을 들어야 했기에 조용히 앉아서 기다렸다.

철들 때부터 지금까지 십여 년을 따라다니던 나의 그림자! 나의 불청객! 그 실체가 벗겨지는 순간인데도 그저 심정은 담담했다.

병명은 '알레르기 비염'이었다. 원인은 먼지와 새우, 새우는 일평생 먹지 않아도 되지만 나와 함께 호흡하는 먼지는 내가 떠날 수 없는 공기같은 것인데…

나는 어떻게 완치시킬 방법이 없느냐고 용기를 내어 물었다. 간혹 레이저로 수술하는 경우도 있지만 완치는 어렵다고 했다. 본인의 주의에 따라 더 하고 덜 하고만 있을 뿐이니, 항상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청결하게 살아야 한다고 의사는 말해주었다.

나는 불치병을 선고 받고 집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옷소매를 적시던 일, 출근하자마자 코를 풀어대 휴지통에 하얀 휴지가 가득 했던 일, 그리고 결혼해서 어머니와 남편의 안타까운 시선들이 스쳐 지나갔다.

길을 가다 무단횡단을 하거나 고성방가를 하거나 침을 뱉는 사람을 보면 눈쌀을 찌푸렸다. 의식 속에 살아있는 사회의 질서를 어기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비정상이으로 보였다.

나는 이제 그정도는 아니겠지만, 그 동안 코흘리개로 여러 사람들을 불쾌하게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젠 코흘리기를 내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만약, 암이라든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가는 길이라면 그 충격과 상상은 말할 수 없겠지.' 스스로 위로하며 용기를 냈다.

이제는 코흘리기가 많이 멈추었다. 한약과 양약을 병행하며 민간요법을 꾸준히 썼더니 많은 효과를 보았다. 그래도 서늘한 아침이면 그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