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까지 다시 보기도 합니다. 똑같은 배우, 똑같은 줄거리, 똑같은 대사지만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장면들을 찾게 되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처음 볼 때는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듣지 못했던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누구와 보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혼자 보는 게 좋은 영화가 있고 누군가와 보는 게 더 좋은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혼자 어두운 거리를 걸으며 돌이켜 보는 게 좋을 때도 있고, 스크린이 밝아지자마자 같이 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때도 있습니다.

화려한 밤거리에서 다시 본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낡은 오토바이 포데로사에 몸을 싣고 남미대륙횡단에 나선 푸세와 알베르토의 여행에 동행하고 돌아온 현실의 거리는 너무도 낯설었습니다.

추끼까마따 광산으로 향하는 사막에서 젊은 부부들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던 모습은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화려한 거리는 때 이른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선물가방을 손에 든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로등 아래엔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가 동전바구니를 들고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사람들의 미소 사이로 보이는 사내의 모습에서 광산으로 향하는 젊은 부부의 검게 그을린 얼굴을 봤다면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요?

그 질문을 들은 푸세와 알베르토는 한참동안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저희는 그냥 여행을 하는 중입니다”라고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는 푸세에게 젊은 부인이 말합니다. “두 분의 여행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이라고.

갑자기 낯설어진 거리를 걸으면서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사내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행복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로등 아래의 사내는 과연 이 사람들의 여행에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빌어줄까 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나비효과>는 국내에 개봉하면 반드시 다시 보려고 했던 영화입니다. 영화가 재미있기도 했고, 미리 본 DVD버전의 결말과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의 결말이 다르다는 이야기 때문에 극장개봉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똑같은 영화지만 마지막 결말이 다른 두 영화는 마치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선택을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 방법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으니까요. <나비효과>를 스릴러 영화, 혹은 SF영화라고 분류하지만, 영화의 결말(두 가지 결말 모두)을 보고 있으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건 선택의 기준이겠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만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다른 누군가는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누구의 희생을 감수할 것인가의 문제, 결국 누구를 위한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인 셈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두 번, 혹은 서너 번 봤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의아한 눈길로 바라봅니다. 한 번 보면 다 아는 이야기를 무엇 하러 또 보느냐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영화라고 해도 다시 보는 순간 그 영화는 이미 다른 영화입니다. 다른 느낌, 다른 생각, 다른 감동으로 보는 영화는 분명히 새로운 영화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