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지만 누군가는 살아남아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을 보며 관객은 감동하게 됩니다.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여덟 명의 병사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라이언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이 과연 그런지는 의문입니다.

전쟁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완벽한 군인이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홀로 누비며 사람들을 구하고 적들을 무찌르는 건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현실은 노르망디 해변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름 없는 병사들의 모습에 더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살짝만 건드려도 터져버리는 웃음의 지뢰밭’이라는 수상쩍은 문구(이 문구가 얼마나 어이없는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게 됩니다)로 관객을 유혹하는 영화 <노맨스랜드(No Man's Land)>는 보스니아 내전이 그 배경입니다.

보스니아 지원병 치키와 체라는 동료들과 함께 자신들의 참호로 향합니다. 그러나 짙은 안개 때문에 길을 잃은 일행은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잠이 듭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자신들이 세르비아군 참호 앞에서 잠이 들었던 사실을 깨닫게 되고 세르비아군의 무차별사격으로 치노만 살아남아 버려진 참호에 남게 됩니다.

한편 세르비아군 진영에서는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두 명의 군인을 참호로 보냅니다. 목숨을 걸고 참호에 도착한 그들은 체라의 시체에 지뢰를 설치합니다. 그 순간 숨어있던 치노는 그들을 향해 총을 발사해 한 명의 세르비아군을 사살합니다.

치노가 살아남은 세르비아군 니노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체라가 움직이지만 지뢰 때문에 그들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세르비아군 진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늙고 지친 군인들은 참호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없습니다.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참호 밖으로 ‘밀려나온’ 니노는 아직 총 한 번 제대로 쏴보지 못한 신병입니다.

전장의 한복판에 고립된 세 명의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UN평화유지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장에 배치된 프랑스군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기 위해 그곳에 왔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양측의 요청으로 프랑스군 상사는 참호에 고립된 세 사람을 구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만 평화유지군 책임자인 영국군 대령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고 무조건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이 와중에 수상한 낌새를 알아챈 언론이 끼어들자 평화유지군은 어쩔 수 없이 구조작전을 시작합니다. 독일군 지뢰제거 전문가가가 지뢰제거 작업을 하는 동안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군인들은 남의 일 보듯 무관심하게 지켜볼 뿐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노맨스랜드>의 홍보문구를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홍보물엔 기가 막힌 코믹영화라는 외국 언론의 문구가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노맨스랜드>는 결코 코믹영화가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블랙코미디에 가깝습니다.

그동안 봐왔던 전쟁영화와도 다릅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무기력해진 병사들,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모르는 평화유지군, 자신의 안전에만 관심이 있는 장교, 늘씬한 비서와 재미보는 게 전부인 지휘관. 우습지만 어쩌면 이런 것들이 더 현실에 가까운 건지도 모릅니다.

웃을 순 있지만 결코 코믹영화는 아닌 이 영화에 ‘살짝만 건드려도 터져버리는 웃음의 지뢰밭’이라는 문구를 붙인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코미디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