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은 그 사랑의 끝을 보지 않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할 거라고 믿으니까요. 서로를 향한 마음만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고 항상 함께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이라는 괴물 앞에서 영원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결국 행복했던 시간들의 추억만 남게 됩니다.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믿었던 순간들, 따스한 미소와 부드러운 손길, 그리고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생 츠네오가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마작게임방 손님들 사이의 관심사는 매일 밤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노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노파가 끌고 다니는 유모차에 큰 돈이나 엄청난 양의 마약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아침, 마작게임방 사장의 심부름을 다녀오던 길에 츠네오는 노파의 유모차와 마주치게 됩니다. 놀랍게도 유모차에는 소녀가 타고 있었습니다. 유모차에 타고 있던 소녀는 노파의 손녀인 조제.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불편해 걷지 못해서 매일 밤마다 노파가 유모차에 태워서 동네 구경을 시켜주던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조제와 마주친 츠네오는 조제와 노파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뜻하지 않은 식사대접까지 받게 됩니다. 그날 이후 츠네오는 방에서 책만 읽는 게 전부인 조제를 찾아가고 둘 사이는 가까워집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밝은 대학생 츠네오가 우연히 다리가 불편한 조제를 만나게 되고 그 둘은 가까워집니다. 고양이와 꽃을 보기 위해 할머니가 밀어주는 유모차를 타고 새벽에 몰래 동네를 산책하던 조제에게 친구가 되어 준 츠네오는 그동안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조제와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리가 불편한 조제가 혼자 살 수 없을 거라며 조제와 함께 살기 시작한 츠네오의 마음은 처음엔 동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깊고 깊은 바다 속에서 살던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면서 세상으로 헤엄쳐 나오게 됩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건 화려하거나 떠들썩하지 않아서입니다. 츠네오와 조제가 만나서 사랑을 하는 모습이 담담하고 조용하게 펼쳐집니다. 마치 아는 사람 누군가의 사랑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두 사람이 있고, 가까워진 둘이 사랑을 나누고, 결국 헤어지는 사랑이야기 말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영원했으면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습니다. 깊은 바다 속에서 헤엄쳐 나온 은색 물고기가 자유롭게 세상을 헤엄치는 것처럼 조제도 츠네오와 함께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가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츠네오와 헤어졌지만 조제는 깊은 바다 속에서 살아가던 예전의 조제가 아닙니다.

조제와 헤어진 후 길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츠네오와 여전히 집 안에서 다이빙을 하듯 의자 아래로 굴러 떨어지지만 혼자 시장을 보고 생선을 굽는 조제의 모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