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어색하지는 않을까, 영화가 유치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선뜻 극장에 가기가 꺼려집니다.

물론 아역배우들이 성인배우보다 더 훌륭하게 연기를 한 영화들도 많습니다. <식스센스>가 그렇고, <아이 앰 샘>이 그렇습니다. 국내영화로는 <집으로>나 <선생 김봉두> 같은 영화가 있습니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아홉살 인생>을 얼마 전에야 보게 됐습니다. 처음 극장에서 개봉했을 땐 솔직히 전혀 모르는 아역배우들만 등장하는 영화라 선뜻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아홉살 인생>은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 사이에서 조용히 간판을 내렸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습니다. 얼마 전 후배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 후배가 올 해 본 영화 중에 <아홉살 인생>이 가장 좋았다고 말하더군요. 그제야 <아홉살 인생>을 기억해내고 보게 됐습니다.

동네친구들을 괴롭히는 5학년 검은 제비를 이겼지만 검은 제비의 자존심을 위해 그 사실은 말하지 않겠다고 할 줄 아는 녀석입니다. 누나와 단 둘이 사는 친구 기종이를 위해 매일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나눠먹을 줄 알고, 눈을 다친 어머니에게 색안경을 사드리기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는 속이 깊은 녀석입니다.

어느날, 서울에서 장우림이라는 여자아이가 전학 오면서 여민이의 아홉 살 인생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새침데기 우림이에게 마음을 뺏긴 여민이는 편지를 써서 자기의 마음을 고백을 하지만 창피만 당하고 그동안 여민이를 좋아했던 금복이와 우림이는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이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은 언제쯤 알게 되는 걸까요? 소중한 사람에게 줄 선물을 위해 돈을 모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편지를 쓰면서 세상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거겠죠.

어른들이 보기에 아홉 살 아이들은 여전히 코흘리개 어린애들도 보이지만 그 아이들에겐 아홉 살 나름의 인생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홉 살, 뛰어놀기만 해도 정신이 없을 것 같은 나이지만 여민이에게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눈을 다친 어머니, 누나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친구 기종이, 자신을 좋아하는 금복이와 자기가 좋아하는 우림이, 새로 등장한 싸움꾼 고릴라, 거기에다 골방철학자 아저씨와 피아노 교습소 누나까지.

어쩌면 여민이의 세상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어른들의 세상처럼 복잡하고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여민이의 아홉 살 인생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따뜻해 보입니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저 친구들과 뛰어놀기에 급급했던 기억이 떠올랐으니까요. 그렇지만 여민이와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웃게 됩니다. 때론 대견한 마음에, 때론 안타까운 마음에, 그리고 때론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그 시절 몰래 좋아했던 그 아이는 지금쯤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