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없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재산이 있어도 고민, 없어도 고민, 건강해도 고민, 병이 나도 고민이다. 건강한 사람은 병에 걸릴까봐 고민이고 병든 사람은 죽을까봐 고민이다. 그래서 고민의 종류는 다를 수 있지만 고민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달 전의 이야기다. 지방에 있는 한 대학 법인의 이사님이 임기가 만료되어 이사직을 떠나게 되었다. 이 대학의 이사회는 대학을 떠나는 이사님께 감사패와 함께 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거북이를 선물로 드렸다. 그동안의 노고에 비하면 별로 대단한 선물도 아닌데 이사님은 받기가 송구스럽다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이날 행사를 끝내고 필자는 학교 공용차로 퇴임하는 이사님을 그의 자택까지 배웅하고 위로했다. 이분은 지방의 명문 사학에서 고등학교 교장직을 십수년간 봉직하다 몇 년전에 정년 퇴임하신 분이다. 그런데도 오늘 받은 선물이 최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농반진반으로 오늘밤부터 편안히 잠자기는 다 틀렸다고 하셨다. 왜냐고 물었더니 도적이 무서워 어찌 잠을 자겠느냐고 했다.

필자는 웃고 말았지만 황금이 사람들에게 행복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며 금붙이가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할 수도 있고 탐욕을 유발해서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투금탄(投金灘) 이야기다.
 
전설적인 이야기지만 이조년이라는 사람이 그의 형 이억년과 함께 길을 가다 금덩어리 하나를 줍는다. 형제는 이 금덩어리를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 이들은 공암진에서 한강을 건너는데 강 가운데 쯤에 이르렀을 때 동생 이조년은 금덩어리를 강물에 집어 던져 버렸다. 놀란 형이 연유를 물었더니 동생이 말하기를, 형에게 금덩어리를 나누어 주고 나니 자꾸만 형이 미워져 차라리 금덩어리를 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동생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있던 형은 자기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하면서 품속에서 금덩어리를 끄집어내어 강물에 던져버렸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기들이 금덩어리를 갖고 싶지 않았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 금덩어리를 구제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지금처럼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형제우애가 황금보다 귀하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는 이 금덩어리는 강물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 전설적인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우리 사회와 우리 인간에게는 황금보다 귀한 것이 너무나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고 황금이 최고이고 전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존 파이퍼(John E Pfeiffer)는 그의 책 ‘창조적 폭발, 예술과 종교의 기원에 대한 탐구’에서 칼라하리 사막에서 살고있는 원주민들은 아주 귀하고 가치가 있는 물건을 손에 넣게 되면 불안을 느낀 나머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되도록 이면 빨리 넘겨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몇일이 지나고 나면 그 귀한 물건은 아주 멀리 가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이같은 습관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고 부모들의 교육에 의해 형성된 습관이라고 했다. 이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생후 6주부터 6개월 사이에 귀한 물건을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철저한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귀한 재화일수록 무서운 화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재화가 편안한 잠을 빼앗아 갈 수도 있고 형제의 우애를 빼앗아 갈 수도 있으며 재화를 소유함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결국 재화가 행복만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반대급부로 위험과 불행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리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화의 가치를 부정적 시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재화 그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용하기에 따라 자기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고 형제의 우애를 돈독하게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서 우리는 귀중한 재화를 회피하거나 버려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칼라하리 사막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처럼 귀중한 재화일수록 멀리 갖다 버리라고 가르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재화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하고 재화를 얻는 방법, 재화를 관리하는 방법, 재화를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도 잘 가르쳐야 한다. 다시말해서 재화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함께 가르쳐야 하고 재화보다 더욱 귀중한 것이 인간에게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도 함께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칼라하리 사막의 원주민들과는 정반대로 재화와 권력에 대한 소유욕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다. 돈과 권력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돈과 권력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이미 소유한 자들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고 반면에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은 그것을 빼앗아 가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국회가 전쟁터가 되고 기업이 불구덩이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이로인해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돈과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맹신주의가 우리 인간 사회를 폐허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한평생 교육에 몸을 바치고도 초라한 주택에서 넉넉지 못한 생활로 노후를 보내시면서도 조그마한 금붙이 하나 때문에 편한 잠을 자기가 다 틀렸다고 하시던 선생님의 소박한 웃음이 남긴 여운에서 나는 희미한 희망의 불빛을 보는 것 같아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