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에게나 화가 있다. 틱낫한(Thich Nhat Hanh)은 “화는 신체의 장기와 같아 함부로 떼어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화를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화가 생기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도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너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의식중에 입은 상처가 쌓이고 쌓여서 화가 될 수도 있겠고, 현실적으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억울함을 당했을 때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두면 화가 될 수가 있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불가항력적인 질병에 의해 재산이나 가족을 잃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아는 분 중에는 몇 년 전 중학교 3학년짜리 독자 아들이 강물에서 수영을 하다 익사하였는데 이로 인해 평소 건강했던 그의 어머니가 화병이 나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일이 있다. 이처럼 화가 우리 속에 쌓이면 병이 될 수도 있고 또다른 화근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화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달 전의 이야기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대학에 다니는 나의 손녀 딸이 방학을 맞이해서 귀국했다. 그는 나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할아버지, 한국 사람에게만 있는 병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손녀딸의 뜻밖의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화병”이라고 했다.

캐나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교과서에 보면 한국말의 발음 그대로 ‘화병(Hwabyung)’이라는 병명이 나오는데 이 병은 한국인들에게만 있는 한국의 민속적 증후군으로 노여움과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병이라고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화병은 한국인들 가운데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조건 여자는 참아야 하고 어른들 앞에서 말대꾸를 해서는 안되고 집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나갈 정도로 큰소리를 내서도 안된다는 전통적인 인습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화병에 걸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명치 밑에서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것이 치밀고 올라 오는가 하면 심하면 심장이 금방이라도 멈춰버릴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여성들처럼 쉽게 화병에 걸리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화가 쌓이면 자기감정을 제대로 콘트롤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이같은 상태가 심화되면 자기와 관계도 없는데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자동차에 돌을 던지고 싶고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래서 화를 바로 다스리고 제대로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7월8일 오후 6시 37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남동 소재 한 성당 앞마당에서 이 교회 여신도 염모(48)씨가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지난 5월20일 오후 9시 15분쯤에는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에 소재한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나오는 여의사 안모(44)씨가 교회 옆 골목에서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두 사건의 용의자 박모(38)씨가 경찰에 체포되어 진술한 내용들에 의하면 도망친 아내(몽골인)가 천주교회 신자였다는 막연한 이유로 교인들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가정문제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교인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 사건 외에도 잘못된 화풀이는 얼마든지 있다. 용산 철거민 참사가 그렇고 쌍용자동차 문제가 그렇다. 갈 곳도 없는 세입자들을 법만 앞세워 마구 내쫓는 사업자의 냉혹한 처사가 세입자들을 크게 화나게 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화가 난다고 해서 망루위에 위험물질을 쌓아놓고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과 자동차를 향해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화풀이에 가깝다. 이같은 화풀이가 더 큰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문제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 체제 아래서는 기업의 경쟁력이 생명이다. 경쟁력없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기업은 자기 살을 깎는 아픔을 무릅쓰고 인적 구조조정을 포함해서 경영혁신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기업이 부실하게 된 책임이 근로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데 일시에 일천명에 가까운 근로자들을 집단 해고한다는 것은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혹하고 억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의 탓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해고 근로자들이 단결해서 공장문을 걸어 잠그고 조업을 방해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더욱 아니다. 

그리고 중요한 국가 산업체를 요새화해서 끝없는 폭력투쟁을 하겠다는 것은 화풀이에 가깝다. 화풀이를 해서 덕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근로자들은 서럽고 억울하지만 더 큰 불행을 막고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리고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으로 퇴로를 찾아야 한다. 이같은 현실을 무시하고 화풀이로 이어진다면 돈도, 명예도, 재취업의 기회도 모두 다 함께 잃어버릴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는 화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숙명적인 것이라고 생각될 때는 감심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욕심대로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다분히 숙명적인 요소가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화의 근원이 인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성적으로 화를 풀어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는 화가 남는다. 그것이 축적되어 어느 시점에 가서 폭발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달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해서 불안하지만 작은 평화가 내 속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은 특유의 화병을 앓고 있는 민족이다. 우리 사회는 ‘화’라는 크고 작은 폭탄을 키워가고 있다. 이 폭탄이 가정에서 터지면 가정이 날아가고 회사에서 터지면 회사가 공중분해 된다. 이 폭탄이 커지면 커질수록 파괴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화병을 치유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일을 삼가야 하겠지만 화가 난다고 무절제하게 화풀이를 해서 아무 책임도 없고 죄도 없는 선량한 시민들에게 까지 불행을 안겨주는 일은 그 누구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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