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폐막작이었던 변혁 감독의 <주홍글씨>는 사랑과 유혹에 관한 영화라고 합니다. 부러울 것이 없는 강력계 반장인 기훈에게는 다소곳하고 순종적인 아내 수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훈은 수현의 고등학교 동창인 가희와의 불륜을 즐기고 있습니다.

아내인 수현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기훈은 가희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지만 가희 역시 임신을 하고 기훈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훈이 여전히 두 여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동안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남자가 살해되고 유력한 용의자로 피살자의 아내인 경희가 지목됩니다. 사건을 수사할수록 기훈은 경희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보면 볼수록 어디선가 낯이 익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영하의 단편소설, 그것도 한 편이 아니라 두 편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역시 마지막 엔딩크레딧에 원작이 김영하의 <거울에 대한 명상>과 <사진관 살인사건>이라는 자막이 나오더군요.

두 편의 이야기 모두 꽤 재미있었고 탄탄한 구성이었다는 기억이 남아있지만 영화 <주홍글씨>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이야기를 억지로 끼워맞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진관 살인사건’과 수현을 둘러싼 두 여자의 관계가 얽혀있는 것 같지만 사실 두 사건은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사진관에서 손님과 사랑에 빠진 경희가 기훈에게 던지는 메시지,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관객들에겐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자신의 누드사진으로 경희를 유혹하는 남자는 <사진관 살인사건>에서처럼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지도 않습니다.

수현과 가희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기훈에게 경희는 단지 업무 때문에 만난 여자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감독은 마치 두 사람의 관계가 뭔가 중요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처럼 꾸며놨지만 관객들은 쉽게 납득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광고와 예고편을 통해 세 여자가 한 남자를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훈과 경희의 연결고리는 용의자와 형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영화의 핵심은 오히려 후반부에 있습니다. 가희의 생일날, 기훈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가희의 실수로 두 사람이 자동차 트렁크에 갇히면서 그동안 숨겨졌던 이야기가 밝혀집니다.

극한 상황에 처한 두 사람의 심리묘사야말로 <주홍글씨>의 핵심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영화의 후반부와 그 전까지의 장면들은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두 개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관객들은 갑자기 등장한 낯선 장면을 보고 처음엔 놀라지만 너무 늘어지는 전개에 지루해하기 시작합니다.

기훈을 둘러싼 가희와 수현 사이의 비밀이 밝혀지는 동안 경희는 관객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만 결말 부분에서 뜬금없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리곤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전혀 섞일 수 없는 두 개의 이야기를 억지로 엮어놓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두 개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던 재미와 개성을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치 간이 제대로 안 된 비빔밥을 먹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