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른 후에도 이곳은 가난한 빈민들의 소굴이었다. 그러나 그곳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말로 황금소로가 되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야로슬로프 시인이 이 빈민가에서 태어났고 실존주의 대문호 카프카(franz kafka)도 이 빈민굴에서 집필을 했기 때문이다.

그덕에 지금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나 역시 카프카의 생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며 그를 흠모했다. 황금소로의 옛 건물들은 옛모습 그대로지만 2층 내부에는 중세시대 갑옷과 칼 그리고 고문기구와 의복 등이 전시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층은 갖가지 기념품 상점들로 들어차 있다.

프라하 성을 관람한 후 축조한지 600년된 까레이 석조 다리로 향했다.
성에서 다리에 이르는 약 1km의 거리는 중세시대 골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몰다우 강 위에 세워진 이 석조 다리에는 1863년에 만들어 세워진 30여개의 조각상이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있는가하면 성인들의 조각상과 왕들의 조각상도 있다. 이들 조각상 중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얀네포프스키 신부의 동상이다. 이얀네포프스키 신부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절대 왕권을 자랑하는 왕의 처인 소피아 왕비가 불륜을 저질렀다. 왕비는 순간의 쾌락때문에 자신이 진 죄를 사함 받고자 이얀네포프스키 신부를 찾아가 고해 성사를 했다. 왕비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왕이 신부를 불러 회유와 협박으로 왕비의 비밀을 말하라고 했으나 신부는 끝까지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켰다. 이에 화가난 왕은 신부의 혀를 자르고 그의 시신을 몰다우강에 던졌다.”

이얀네포프스키 신부 상 앞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 있었다. 다른 여타의 조각상과는 달리 그의 동판은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무엇인가를 빌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의 상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설이 퍼지면서 그의 조각상은 새로운 기복신앙의 대표적 상징물이 된 것이었다. 나 역시 그의 동상에 손을 얹고 나름대로의 소원을 빌고 기념 촬영까지 한 후 그의 한이 서려 있을 몰다우 강을 내려다 보며 천천히 516m의 교량을 건넜다.
 
중세도시의 골목을 여기저기 지나 체코식으로 점심을 먹은 후 구시가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광장 한켠에 1338년에 세워졌다는 시의회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건물에는 특이한 시계가 하나 부착되어 있었다. 천문시계라고 불리는 이것은 하루를 20시간으로 나누어 시간을 나타내었는데 시침이 3개였고 색깔이 입혀져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천동설에 입각해서 이 시계는 만들어졌으며 시계 가장자리는 별의 움직임을, 시계 안의 숫자는 달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푸른 색은 하늘, 황토색은 땅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시침이 푸른색 가운데 올 때가 정오라는 것이다.

이 시계는 매 시간 종을 치는데 이때 시계주위에 있는 각종 조각들이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해 이를 보려는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메운다. 우리도 4시에 있을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광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30여분간을 기다렸다. 시계를 중심으로 좌우에 4개의 조각상이 있는데 그들은 인간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고 있었다.

거울을 든 인형, 돈자루를 든 인형, 줄을 잡고 있는 해골, 악기를 연주하는 인형이 이들인데 거울은 인간의 외모를 비추는 도구로서 사람들이 자신이 늙는다는 사실을 잊은채 그걸 들여다 보며 예쁘게 꾸미려는 허영심을 뜻하며 돈자루는 끝 없는 인간의 욕심을, 악기 연주는 인간의 타락과 쾌락과 허무를 그리고 해골은 이 모든 것이 끝내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죽음으로 끝나는 헛된 것임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4시 정각이 되자 드디어 종이 울렸다. 이와함께 해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잡고 있는 줄을 잡아 당겼고 시계위의 문에서는 12사도가 원을 그리며 돌아 갔으며 해골 옆의 악기 연주자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서 있었다.

잠시 동안의 모습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특히 해골의 고개 끄덕임과 악기 연주자의 가로 저음은 인간사를 대별하는 모습이었다. 그랬다.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죽음의 시간이 어느 순간에 닥칠지 모르는데도 온갖 욕망에 사로잡혀 영원히 살 것처럼 이기적이지 않는가!

해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너희는 죽음에 이르는 길에 있어!”라고 의미를 깨우쳐 주고 있으나 쾌락에 사로잡힌 연주자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니야, 인생은 즐기는 거야”라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구시가 광장은 많은 의미를 간직한 광장이었다. 이곳 광장의 대리석에는 27개의 십자가가 새겨진 블록이 있는데 이는 1621년 면죄부를 팔아먹는 카톨릭에 저항해 종교 개혁을 주장하다 처형된 27명의 체코 귀족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구시가 광장은 1968년 사회주의에 반대하며 체코의 민중들이 민주화를 외쳤던 이른바 ‘프라하의 봄’의 봉기 현장이기도했다. 마침 귀국하여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던 시인이고 극작가이며 전 체코 대통령이었던 하벨이 제7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발표를 듣고 매우 기뻤음은 체코를 다녀왔다는 인연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은 6천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진입한 소련군에 의해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채 시들고 말았다. 하지만 체코의 민중 운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인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로 전파되어 훗날 공산주의 해체의 밑거름이 되었다.

일행은 공산주의가 붕괴될 당시 100만 인파가 몰려 환호했던 바슬라프 광장을 둘러 체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양고기와 감자로 만든 요리는 그런대로 맛이 있었으나 너무짜고 기름졌다. 동유럽 음식이 공통적으로 짠 것은 이 지역의 특징이 저혈압 환자가 많기 때문이란다.
물은 어느 식당을 가던지 별도의 물값을 지불해야만 했다. 맥주 값이 2유로인데 비해 물은 3.5유로(4900원)나 되었다.

이곳에서 김포시 평통은 시찰 첫 번째 통일 세미나를 가졌다.
박재근 위원의 ‘동구 공산권 국가의 붕괴 원인’이라는 주제 발표 후 이에 대한 질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사회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 자본주의로 발을 내디딘 체코 땅에서 그들의 체제 붕괴 원인에 대해 토의하자니 더욱 뜻깊어 보였다.

일행은 체코 시내를 돌면서 발견한, 아직도 남아 있는 체코인들의 사회주의 습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사회주의 붕괴 후 새롭게 도약하는 체코를 보면서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강조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왕국을 세우고 대남적화 통일 노선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의 현실과 그들이 붕괴될 수 밖에 없는 현상에 대해 목줄을 세우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민주평통위원들의 가슴에 살아 숨쉬는 애국심과 통일 열망이 얼마나 큰가를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토론은 1시간여 동안 실시됐다.

식사를 마치고 거리 표정을 살피고자 먼저 밖으로 나왔다. 일몰의 거리. 중세풍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초가을 바람이 불었다. 고풍스런 거리에 주황색 가로등 빛이 이채롭고 어쩌다 적막한 풍경의 골목에서 개를 앞세운 여인 하나가 기웃하다 사라졌다.

고목 아래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응시하며 짙어가는 어둠 속을 살폈다. 그 많던 관광객의 모습도 줄지어 달리던 승용차도 정지된 사진처럼 움직임이 끊어진 중세 도시의 거리에 어둠만 내려앉고 있었다.

어디선가 종이 한번 울렸다. 다시 한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유보자크 카페의 문이 열리더니 일행들이 왁자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나는 이국의 밤 풍경에 취해 거리를 묘사하던 사고를 접고 일행과 합류하여 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