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부부 강간죄를 인정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두고 말이 많았지만 실제로 법원이 부부 강간죄를 인정함으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2009년 1월16일 부산지방법원 형사합의부는 피고인 임 모(42)씨가 자기 아내(필리핀인, 24)가 생리중이라는 이유로 성관계를 거부하자 흉기로 위협,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특수강강죄를 적용 징역2년6월 집행유예 3년 이라는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부부간의 강제적 성관계를 단순한 강제 추행으로 보지 않고 특수강간죄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세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아내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고 강간한 것이므로 강간죄의 보호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피고인은 자기가 아내의 감정을 무시하고 억지로 성관계를 요구한 것은 인정하지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며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고 억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1월20일 오후 부산시 남구의 자택 2층에서 전깃줄로 목을 매 자살했다.
 
필자는 언론사의 이 사건 보도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이 불행한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며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이 사건의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사회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너무나 소홀히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판단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이 사건을 다시한번 리바이벌 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남편이 아내의 프라이버시를 조금만 중요시했다면 생리중에 있는 아내가 원치않는 성행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이 성을 전제로 성립된 것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감정이나 인격을 무시하고 강제로 성행위를 했다면 이는 아내의 프라이버시를 크게 침해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유없이 아내가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거부했을 때 이혼사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강압적인 방법으로 아내의 성을 지배할 수 있는 명분이 성립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사건의 당사자인 피고인의 아내는 어떻했는가를 생각해보자. 그가 외국 여성이라는 점에서 볼 때 언어 문제로 남편을 설득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고 그의 연령으로 보아 성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남성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아내로부터 성관계를 거절당했을 때 남성들이 느끼는 자존심 말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성적인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기를 과시하려는 본능적인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디트리히 슈바니츠 교수는 그의 저서 ‘남자’라는 책에서 여성들이 사랑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히면 “남자 파트너는 낙원을 만들어 주고 행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연애시절의 남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잠시 여성적이 되며 사려깊고 사랑스러워지며 사랑하는 여자의 존재를 존경하며 경쟁적 태도를 포기하고 정서적 감정을 표현한다. 이것이 여자에게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사랑할 때만 적용되는 이 기준을 일반화시켜 모든 남자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이 말은 남성이란 연애할 때와 결혼을 했을 때의 감정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슈바니츠는 “남자란 가면을 쓰고 승리자 행세를 하며 절대로 마음속을 들키려하지 않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거나 자살까지 감행하는 체면이 강한 존재”라고 했다. 이같은 남성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할 때 부부간의 사소한 문제가 크게 확대되어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 사건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부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직 당국에 고소해서 남편의 프라이버시를 크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부간의 성문제는 전적으로 사생활에 관한 문제이다. 사생활에 속한 문제가 사회에 노출되거나 법적인 심판대에 오른다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부부관계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의 사생활 문제를 폭로하거나 지나치게 노출시켜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은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제 끝으로 이 사건의 재판부는 자기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가 남아있다. 민형사간 가정문제를 다루는 재판부가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부부의 성문제를 다룰 때 그러하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속담에도 “부부 사이의 문제는 귀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부부에 관한 문제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어려운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재판관의 고충도 이해는 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속한 문제가 사법적인 논란거리가 되거나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가 혼합되어 필요 이상의 과중한 처벌을 받거나 불이익이 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1970년대 이후 대법원에서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나온 이후 40여년 만에 부부 강간죄를 새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부부의 성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프라이버시로만 보아 넘길 수 없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판결에 대해 우려하는 점도 적지 않다. 이제 남편들은 아내의 방에 들어갈 때도 아내의 승낙을 받아야 하고 잘못 바지를 벗었다가는 강제 추행으로 퇴출 당할 수 있고 조금만 심하면 강간죄로 처벌받게 된다는 자조감을 떨쳐버리기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판결이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혼 구실을 만들기 위해 부부 강간을 조작할 수 있고 재산편취를 위해 위장결혼도 쉽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판결이 상호신의를 바탕으로 하는 부부관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법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부부의 성문제가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부부의 성문제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폭력이나 극한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국가기관이 부부의 성문제에 개입하거나 책임을 묻는 일은 극히 삼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