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열아홉 김한권 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열아홉 살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12월인 이즈음 대학 진학에 몰두하고 있거나 자신의 진로를 일찌감치 찾아 사회초년생의 길을 걷기도 한다. 김 군은 후자다.

이번 씨티21뉴스 인터뷰는 김한권 군이다. 김 군은 내년 3월 세계 굴지의 전자회사 삼성전자에 출근을 앞두고 다른 친구들과 조금 특별한 고교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포제일공고 컴퓨터응용기계과 3학년 김한권 입니다”

수능성적 발표를 며칠 앞둔 지난 12월 초순. 겨울임을 알리는 눈발이 하나씩 날리던 날 김포 북변동에 있는 김포제일공고를 찾았다. 생각보다 넓은 교정에 김 군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 군은 1999년생 토끼띠다. 지진으로 인해 수능 시행이래 처음으로 수능날짜가 미뤄지며 99년 토끼띠에 대한 수난사가 각종 포털에서 상위에 랭크되었다. 한편에서는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일기도 했으나 김한권 군에 대해선 예외 사항이다. 김 군은 내년 3월 삼성전자 출근을 앞두고 하루하루를 값지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 시절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내신도 좋은 편이라 부모님께서는 일반고 진학을 권하셨죠. 하지만 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일반고에 들어가면 사교육비 등 지출하지 않아도 될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후의 설계도 불투명했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소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 그와 관련된 학교에 진학해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는 김 군은 집안의 망가진 물건들을 조립하는 게 재미있었단다. 심지어 부모님의 노트북까지 분해해 원상복귀 하느라 진땀을 뺐다며 웃는 김 군의 눈빛은 분명 말썽꾸러기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김 군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자격증은 밀링기능사, 전산기계제도 기능사, 오토캐드기능사, 기계조립 기능사 등 다수다.

“고등학교 입학 후 바로 기능반에 들어왔습니다. 이왕 전문 기술을 배울 바에는 확실히 배우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죠. 기능반은 국가대표 운동선수와 같습니다. 아침 등교 후 조례가 끝나면 바로 실습실에 와 오후 10까지 연습에 연습하는데 대회가 있을 때는 새벽까지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가장 가슴 뛰었던 날은 삼성전자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작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묻자 김 군은 기다렸다는 듯 전문가적 설명이 들어간다. 3D모델링 후 컴퓨터 입체작업에 들어가고 그 틀을 캐드화 시켜 캠 프로그램 작업을 한다며 이것저것 설명한다. 김 군의 설명을 들으면 기계치인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김한권 군은 어려서 ‘탐험가’가 꿈이었다. 외동이로 자라 어렸을 때 부모님과 이곳저곳을 다니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산과 바다를 돌며 탐험가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었다. 그런 김 군이 기능사 자격으로 당당히 큰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궁금했다.

“기능반은 현재 총 6명의 학생이 소속돼 있습니다. 저희는 전국대회를 목표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죠. 1학년에 입학해 3년 동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온 저는 올해 전국대회에서 2등을 했습니다. 우승자에게는 각 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저는 삼성전자에 지원했습니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데  삼성전자에서 학교로 직접 찾아와 합격 통보를 했습니다. 이날처럼 가슴이 뛰는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초년생이기는 하지만 수입이 생길 텐데 첫 월급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묻자 어머니와 해외여행을 하고 싶단다. 과거 화가의 길을 걸었지만 자신을 키우기 위해 지금은 다른 길을 걷는 어머니를 위해서 말이다.

“뚜렷한 목표,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가끔, 아니 자주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느냐 묻자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단다.

“2학년 때 갈등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들이 있었기에 순조롭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전국대회 2주전이었습니다. 그것도 우리학교에서 진행되는 대회인데 제가 기계를 만지다가 기계가 멈춰버린 사고(금형에 나사가 박힌 사건)가 있었습니다. 하늘이 노랬죠”

사고 당일 김 군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후배 관계의 연이 어찌 쉽게 끊어질 수 있으랴. 기능반 학생들은 멈춘 기계를 가동하기 위해 다음날 동이 틀 무렵까지 온 힘을 다했다. 결국, 하늘은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작업했는데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때가 가장 속상하고 힘들었다며, 그와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작품이 나왔을 때가 가장 짜릿했다는 김한권 군. 그럼, 고교시절의 추억이라는 게 있는데 종일 기능을 익히고 있으니 아쉬웠던 건 무엇일까.

“중2 때부터 하던 검도부를 접은 것이 가장 아쉽웠습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일반 학생들이 다 부럽기도 했었죠. 종일 실습을 하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어 아쉬웠던 거죠”

그렇지만 김 군은 자신이 지쳐 있을 때마다 끌어올리기 위해 힘을 기울인 이호상 교사가 있었기에 이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또한, 자신에게 전문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입사 소식을 듣자 대형현수막으로 축하해 준 학교 측도 감사하단다.

“현재 목표는 국가대표”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자신이 무엇을 제일 잘 할 수 있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는 김 군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삼성전자 입사와 동시에 기능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세계무대에 도전하기 위해서 인데 그러려면 일단 국가대표가 되어야 하죠. 국가대표 선발은 격년으로 그 기준은 올해 1등과 2등, 내년 1등과 2등이 견주어 1명을 뽑는 방식입니다. 저는 올해 2등을 했기 때문에 참가 자격이 부여돼 있습니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 기능을 꾸준히 연마해 국가대표가 되는 게 현재 목표입니다”

김 군은 국가대표가 된 후 세계기능올림픽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럼, 국가대표가 되면 좋은 이유는 뭘까? 김 군은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군 면제, 연금수령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고 한다. 역시 대한민국 사나이들의 군대에 대한 압박감은 일찌감치 철이 든 김 군도 비켜갈 수 없나 보다.

또한, 학업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김 군은 학생이기 때문에 학업은 꾸준히 해 오고 있었다며, 선 취업 후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했다.

기능이란 ‘앞으로의 직업’이라 야무지게 이야기하는 김 군은 배우 박보영을 좋아하고 가수 아이유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거나 검색을 즐기는 영락없는 열아홉살 고3 학생이다. 그러나 그는 십대 중반에 때 이미 자신의 앞날을 설계했고, 설계 후 목표를 정하고 지금까지 하나의 흔들림 없이 도전에 도전했다.

겉으로 보기엔 쉽게 이뤄진 것 같으나 하루 12시간 이상을 기계에 매달려 기능을 익혔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성취감도 맛보았다. 부모에 대한 감사를 알고, 선생님과 학교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으며, 선·후배의 연을 소중히 하는 김 군은 속된 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사람인 ‘철이 든 사람’이 분명하다.

김한권 군은 오늘도 김포를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값진 실력을 갖춘 기능장이 되기 위해 기계 앞에 선다. 그런 그가 Made in Gimpo라는 게 무한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