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동네 > 사람들
“시(詩)와 노래는 제 삶의 특효약이죠”<인물>덕포진교육박물관 이인숙 관장
양미희 기자  |  suho@city21.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5.12  15:00:39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오월의 푸름은 어디까지일까. 천국이 있다면 오월의 푸름은 어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20여년전, 초등학교 젊은 여교사는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는다. 젊은 여교사는 이제 흰머리가 어울리는 할머니 선생님이 되었다. 그는 바로 덕포진교육박물관 이인숙 관장이다.

이인숙 관장은 지난날을 회고하며 시력을 잃고 더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현실이 더욱 두려웠단다. 절망감에 휩싸여 지내는 아내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남편 김동선 선생님은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해 주겠노라며 이곳 덕포진교육박물관을 개관한다.

맑은 풍금 연주로 기자를 반기는 이인숙 관장은 시인 피천득이 예찬하던 오월과 닮았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의 청신한 얼굴이 그에게 고스란히 스며있기 때문이다.

“요즘 저는 약장사를 하고 있죠”

눈이 보이지 않으니 불편한 점도 많을 법한데 그는 아무런 내색 없이 자연스럽게 풍금 앞에 앉아 멋진 동요 한 곡을 뽑아낸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풍금 연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를 듣다보니 엊그제 찾은 관람객이 한 말이 생각난다고 한다. 관람객은 그동안 화학 비료를 먹고 살았는데 이곳에 오니 순수 비료를 먹은 것 같다며 그에게 감사함을 전했다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응원의 힘일까. 시력을 잃은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는 전혀 장애스럽지 않다.

“요즘 저는 약장수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에 비타민을 드리고 있기 때문이죠. 요즘 세상이 어려운 건 마음과 생각, 그리고 정신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해서라 생각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는 특효약이 필요한데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죠”

그는 사람의 마음을 점검하기 위해 선택한 약재는 바로 시(詩)와 노래라 한다. 실제로 그는 150여편이 넘는 시를 암송할 수 있으며, 교사 시절 학생들과 즐기던 동요를 잊지 않고 있다.

“약은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웃음 약, 칭찬 약, 감사 약이 바로 그것인데 우리 마음과 정신에 좋은 약들이죠. 이 약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야 합니다”

스스로 웃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하고,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비로서 자신에게 비타민이 된다고 말한다. 이로 말미암아 정신건강이 튼튼해진다는 그의 이론. 이런 이론을 배경으로 사는 그에게서 무한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일이 즐거우면 방법이 보이고, 일이 싫으면 핑계만 보이죠”

일흔이 넘긴 그는 학생들에게 요즘 말로 인기 짱! 선생님이다. 아이들에게 효도해라, 공부하라는 10마디 말보다 효과적인 직언 때문일까.

“어린 학생들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아 감옥에 갇힌 것 같지만 너희들은 눈이 보여도 마음의 감옥에 갇힌 그런 나이라고요. 그들은 아직 정체성이 확립 되지 않다 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요”

그래서 그들에게 주문한다. 어둠의 감옥에 묻힐 때는 빨리 감옥을 벗어나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을 때에는 승자가 못 된다는 말과 함께.

스티브 잡스가 말해 유명해진 ‘일이 즐거우면 방법이 보이고, 일이 싫으면 핑계만 보인다’라는 필리핀 속담은 어린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단골 메뉴다.

“스티브 잡스의 말을 자주 응용하는 편이죠.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시 주문합니다. 공부가 즐거우면 방법이 보이고 공부가 싫으면 핑계가 보인다며 집중력과 경청의 중요성에 대해 말 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쁨이 스스로 만들어지고 그 결과 리더쉽이 생기는 거라고요”

“제가 줄 수 있는 건 희망과 용기죠”

“사랑아 나는 눈이 멀었다 / 멀어서 비로소 그대가 보인다 / 사랑아 나는 눈이 멀었다 / 멀어서 비로소 그대가 보인다 / 그러나 사랑아 나도 죄를 짓고 싶다 / 바람 몰래 꽃잎 만나고 오듯 / 참 맑은 시냇물에 봄비 설레듯 / 사랑아 나는 눈이 멀었다 / 멀어서 비로소 그대가 보인다”

모교인 이화여대 강연을 떠올리며 정희성의 시 ‘사랑아 나는’을 읊었다. 젊은 친구들에게 눈먼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희망과 용기라며,

“앞을 못 본 지 25년이 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보이던 세상이 천국구나 라는 생각을 하죠. 종교를 떠나 살아있을 때 보이는 세상이 천국입니다. 보고 살 때는 못 느끼던 것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시, 노래 다음으로 유머는 필수 약재입니다”

그는 뜬금없이 가수 비가 자신을 소개하며 동요를 부른다면 어떤 곡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로 시작하는 ‘구슬비’? 아니면 파란우산 검정우산 찢어진 우산…이 등장하는 ‘우산’? 모두 오답이다. 정답은 ‘나~비야’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 봄바람에 꽃잎도 방긋방긋 웃으며 / 참새도 짹짹짹 노래하며 춤춘다♬

그의 유머는 타의의 추종을 불허한다. 글을 읽을 수도 화면을 볼 수도 없는 그는 아재개그는 물론 10대 아이들이 즐기는 우스갯소리도 서슴없이 뿜어낸다. 그 비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열린 생각을 하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저는 주로 라디오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다음으로 학창시절 단련된 에너지를 발산하죠. 그래서 청소년들에게도 말해 줍니다. 내가 청소년기에 숙지하던 모든 것이 5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사용할 수 있다고요. 그 시기 뇌는 골든 브레인이기 때문이죠”

어떤 이야기가 나와도 아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그는 천생 선생님이다.

“유머만큼 사람을 가까이 만드는 게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다녀간 소감을 원맨쇼를 보고 왔다.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본 것 같고 이야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의 이야기와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학생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과의 격을 맞추기 위해 연습하고 훈련하고 그렇게 되도록 방법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유치원생부터 90세 어르신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것 같다.

“시는 가슴에서 나오는 새 소식이죠”

그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시간 날 때마다 시를 외운다. 시는 사람을 설득하고 변화를 주기 때문이란다. 자녀에게 사랑한다고,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 잘하라고 100번 이야기해도 소용없단다. 한 편을 시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라며 용혜원의 시 ‘관심’을 암송한다.

“늘 지켜보며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 네가 울면 같이 울고 네가 웃으면 같이 울고 싶었다 / 깊게 보는 눈으로 넓게 보는 눈으로 널 바라보고 있다 /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하기에 모든 것을 잃더라도 다 해주고 싶었다”

고은 시인은 시를 빗대어 ‘염통에서 나오는 새 소식’이라 했다. 또한, 이어령 박사는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영혼을 울리는 풍금소리 같은 글을 쓰고 싶다’라고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정신이 새롭게 깨어난다는 그는 가슴 속에 품고 있는 한 편의 시는 일생에 지침서라 말한다.

교육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양심을 키워주는 것’이라며 양심 없는 인간은 흉기와 같단다. 아이들에게 바른 양심을 키워주는 일이야말로 우리 어른들이 꼭 해야 할 일이란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때쯤. 자신이 너무 떠든 것 같다며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에 여고생의 수줍음이 보였다. 기자가 아직도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자 그의 볼이 불그스레 웃는다.

마지막으로 순예보와 같은 이 관장 부부의 모습을 보고 제자가 지은 자작시 소개해 준다. 지그시 눈을 감고 시를 노래하는 그. 그의 모습에서 20여년전 푸름이 가득한 5월 풍금소리 가득한 초등학교 3학년 2반 교실이 보였다.


 

어느 선생님의 순애보 사랑

                                                                                                                                      목각 이정남

 눈먼 아내여 걱정 마오
 내가 당신의 눈이 되어줄게
 당신 부디 눈물 흘리지 마오
 당신은 은쟁반에 톡톡 
물방울 튀듯 낭랑한 목소리가 어울린다오
사는 것은 어차피 타인이나 우리나 다 똑같은 것이라오
자~ 여기 당신이 마지막 앉았던 3학년 2반 교실이 있소
여기는 조개탄 난로도 있소
여기는 낡은 풍금도 있소
당신 옛날처럼 풍금을 연주하면서 동요를 불러 봅시다
그리고 아이들도 불러봅시다.
땡! 땡! 땡!
수업시작 종은 내가 치겠소.
중년부인 노신사 모두 옛날로 돌아가서
방울방울 눈물 훔치며 옛 추억에 흠뻑 빠져있으오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이 행복하다면 내가 뭘 더 바라겠소
당신은 영원한 3학년 2반 선생님
이승에서 당신과의 맺은 인연은
세상 끝 날까지 감사하면서 살겠소

 

   
 
   
 

 

* 위에 소개한 시 어느 선생님의 순애보 사랑은 이인숙 관장의 음성을 녹음해 옮긴 것으로 행간은 기자가 임의로 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양미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좀쎈언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건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더 아름다워 지기 때문일듯.
그런 생각이 들게하는 기사네요

(2017-05-18 15:11:29)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최근 인기기사
1
“5호선 김포연장, 접경지법에 따라 국비지원 가능”
2
<인사>김포시 인사발령(9월25일자)
3
김포복지재단 유승현 신임이사장 선임
4
김포 서부노인복지회관 건립 '청신호'
5
시도 1호선 확장공사 마무리 … 29일 완전개통
6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한가람초 햇살반 '버금상' 수상
7
양촌 오라니장터장터 축제 개최(23~24일)
8
경기도민의 예술 한마당
9
“우리는,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들”
10
긴~ 연휴 아파도 걱정하지 마세요!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게시판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등록번호: 경기 아 50303 등록일: 2011.11.15 발행인·편집인: 전광희 청소년보호책임자: 전광희
주소: 경기도 김포시 사우중로 48 드림월드프라자 704호 Tel: 031)998-6161 Fax: 031)984-7117  |  이메일 : jkh@city21.co.kr
Copyright © 2004 씨티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