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5 광복기념일을 앞두고 정부는 또 다른 해방을 꿈꾸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그것이다. 우리가 전시작전통제권을 빼앗긴 것도
아닌데 마치 빼앗긴 작전통제권을 다시 찾아야 주권국가가 되는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되니 일부 젊은이들 중에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가 한일 합병 사건쯤으로 생각하고 미국을 침략자로 매도한다.
그래서 지난 8월 10일에는 전직 국방장관 17명과 군 원로급 인사 10여명이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재향군인회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전시작전권 환수가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고 주한미군철수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이같은 중대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8월 11일 오후 3시 서울역 광장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는 전직 국방장관 8명과 예비역 장성 60여명, 시민 5천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낮기온이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이 집회에 참석한 전직국방장관과 예비역 장성들은 모두가 군복을 착용한 채 뙤약볕 아래서 행사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연사로 나온 이들 가운데 김성은 전 국방장관은 땀과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전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되고 한미 연합사령부가 해체되면
한미동맹이 붕괴로 이어지고 경제파탄은 물론이고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에서 우러나온 노병의 절규가 잠자는 우리의 애국심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왜 전시작전권 환수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한국은 작전통제권이 없는 나라인가? 평시 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로부터 1994년 12월에 이미 넘겨받았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전시작전통제권이다. 이 전시작전통제권은 현재 한미 연합사령관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사실상에 있어서는 한미 연합사령부를 통해서
전시작전통제권이 행사되고 있기 때문에 100% 미군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세계 유일의 국가인가? 영국, 독일 등 유럽연합국가들도 평상시에는 각각 자기나라 군대를 지휘하고 있지만
전시가 되면 나토(NATO) 사령관(미군 장성)의 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이들 국가를 군사주권이 없는 나라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분단국가가 아니지만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전시작전통제권이 한미 연합사령부측에 있다고 해서 한국이 군사주권이 없는
나라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처한 특수상황을 무시하고 군사주권을 내세우는 것은 소아병적인 사고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한미연합사가 없어져도 전쟁 억제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미군이 없으면 한반도의 전쟁 억제력은 없어진다. 지금 미국의 월등한
군사력 때문에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군사력은 북한에 비교하면 육군 80%, 해군 90%, 공군 103% 정도로 한국이
열세이다. 우리가 2010년까지 국방개혁 1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북한 군사력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장사정포,
화생무기 등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북한을 상대로 군비경쟁을 해서 북한보다 우위에 선다고 해도 그것이 전쟁
억제력으로써의 효과보다 한반도의 긴장과 전쟁위험요소가 커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위험을 가중시키는 군비경쟁이
아니라 전쟁억제력이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이 아니고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아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 한미 연합사령부가 해체된 이후 우리 정부의 방위비용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난해 9월 국방부가 발표한 2020년을 목표로
한 국방개혁안을 보면 2007-2011년까지 중장기계획에 들어가는 예산 150조를 포함해서 2020년까지 621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는 매년 약 45조원의 예산이 필요로 한다. 이같은 예산으로 군의 정보화 과학화를 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국민이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이같은 예산은 사회간접자본이나 경제 분야에 투자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국가경제는 더욱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발전에 힘을 쏟아야할 국가가 군비증강에 매달린다면 우리가 북한의 꼴을 닮아갈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북한을
설득해서 이 돈을 통일비용으로 사용한다면 남북한이 통일을 해서 함께 잘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넷째,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 이후에도 한미 동맹관계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이 지금까지 북한보다 열세한 군사력으로 안정과 번영을
누려온 것은 한미동맹이라는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한미동맹에 나쁜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다수
국민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한반도 방어에 미국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고 중요한 군사정보도 제공하게 될 것인지도 의문시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군의 작전계획부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된다.
다섯째, 정부는 2020년까지의 실현가능성도 희박한 방위계획 하나 세워놓고 미리부터 한미연합사를 해체해도 되는 것인가? 새 집을 지을만한
자금도 없이 15년 후에 들어가 살 집 설계도 하나 만들어놓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미리 허물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같은 사람을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같은 사람을 가리켜 이상론자라고 하는 것이다. 국가안보는 이같은 이상론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존속하느냐
망하느냐는 현실적 문제다.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국방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2020년 중장기 국방계획이 이루어진
다음에 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가 1994년에 한미간에 논의되었던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해서 그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언제 논의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명분만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국가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한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1980년대 필리핀을 연상케 한다. 1980년대 초반 아키노 정권이 들어선 후 필리핀 국민들은
마르코스 정권을 도와준 미군은 물러가라고 연일 시위를 벌였다. 그때 아키노는 미군을 붙들고 싶어했지만 악화된 국민감정과 여론이 무서워 미군을
내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미군이 떠나간 후 필리핀의 경제는 악화되고 국가 위상은 크게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처럼 한미동맹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간다면 아무도 한국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을 것이다.
<외부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