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쌓인 날, 차가운 겨울 밤 바람이 불고 길이 미끄러운 날 길을 걷게 되면 잊혀지지 않고 떠 오르는 추억이 있습니다. 아마 60년 전의 어느 겨울 날이었습니다. 산과 들은 온통 눈으로 덥혀 새하얗게 보이고 달밤이라 들녘의 풍경이 여명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비현실적인 풍경입니다.

눈길은 미끄럽고 내 앞엔 어머니가 새끼줄로 된 멜빵으로 묶은 삭정이 다발을 메고 걷고 있습니다. 열 살쯤된 저는 허리에 새끼줄로 묶어서 매달아 놓은 고주배기(나무뿌리)를 끌며 어머니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집에 도착하면 새벽 닭이 울 때쯤이었으니 한 밤을 그렇게 걸어서 시오리 떨어진 산 속에서 나무를 해서 도둑처럼 집으로 왔습니다. 살을 에이는듯한 추위도 추위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밤 부엉이 우는 소리가 계속 저희를 따라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 나이가 쉰 하나나 둘쯤 되신 것 같습니다. 겨울방학을 한 나를 한밤중에 데리고 나무하러 그 먼 곳으로 한 밤중에만 다니셨습니다. 내가 어리긴해도 남자라고 의지가 되었는지 절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산에 나무를 하다 산림감시원에게 발각되면 벌금을 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연탄을 살 연료비를 절약할 방편으로 나무를 하며 그 겨울을 나신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유구중학교 교사였습니다. 팔 형제 중 일부는 객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그 학비를 대기도 벅찼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선생 마누라가 들키면 안되기도 하지만 산에 나무를 다니는 모습을 행여 누가 볼세라 소문을 걱정해서 그렇게 한밤 중에 눈길을 걸어 나무를 다니셨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이런 정도의 가난은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무 욕심이 많아서 나뭇짐을 꾸리다가도 준비해 간 새끼줄이 모자라면 광목 속치마를 찢어서 연결해 끈으로 나뭇단을 묶었습니다. 나무를 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했던 것인데, 아마 그 이유가 그 당시 어머니는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에 거의 모든 것을 다걸고 해내려고 작정을 하신 듯 합니다.

나무를 할 산에 도착해서 막상 나무를 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죽은 나무나 쓰러진 나무가 많아서 그저 추수려서 나뭇단을 만들면 됩니다. 꽤 깊은 산중이라 소나무에 쌓인 눈에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리고 그 소리에 놀란 부엉이가 홰를 치며 나는 소리나 우는 소리가 들리면 정말 무서웠습니다. 어머니는 땀을 흘리며 저를 독려했고 낫으로 나무를 자르고 단을 묶었습니다.

나뭇단이 다 묶이고 이제 집으로 갈 준비가 되면 그 때서야 어머니 허리춤에 묶인 작은 보따리를 열었습니다. 찬밥이긴 했지만 집에서 준비해 온 주먹밥입니다. 집으로 갈 동안 정말 힘이 들기 때문에 어머니는 허기를 막기 위해서 배가 든든해야 하기 때문인지 그때 밥을 먹었습니다. 저도 배가 고파서 찬밥이지만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곤 그 밤에 눈길을 걸어 달빛을 밟으며 시오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는 늘 어머니는 찬송가를 부르셨습니다. 지금도 어머님 기일에는 저도 혼자 중얼거리는 노래구절입니다. 겨우 연탄값을 버는 정도의 비용을 대신하는 나무하기인데 그것을 위해 그렇게 자학하듯 나무를 한 이유를 지금은 어렴풋하게 짐작을 합니다. 그 당시 우린 하루 두끼만 식사를 했습니다. 형들, 누이들 모두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형들의 학비와 학용품비를 다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가난하긴 했지만 우리집은 그래도 매달 월급을 받는 선생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집엔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내가 6살 즈음엔 어머니는 계를 조직해서 돈을 마련하려다 잘못되는 바람에 빚쟁이가 되어 아버지의 학교 교사직이 위태롭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채권자들이 학교 교무실까지 찾아와 아버진 교사로서의 부끄러움을 감당해야했습니다. 그 이후 우린 강경에서 유구로 아버지가 전근을 오시게 되고, 빚을 안고 생활도 해야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었습니다.

유구에서 그 겨울밤에 나무를 하던 시절은 어머니가 당신의 잘못을 자책하면서 가난의 강을 건너기로 작정을 하셨던 시절이었을겁니다. 나름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자신의 잘못으로인한 어려운 현실을 견뎌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열 식구가 살아내야만 하는 그 삶의 강은 깊고 아득하기만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면서 힘들 때마다 늘 그 밤길에 어머니가 흥얼거리며 부르던 찬송가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겨울 눈내린 밤에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달빛 속 눈길의 추억이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우리 세대의 그 애절했던 가난이 아직 채 한세대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우리 아들 딸들에겐 아득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 최철호 청석학원 원장

<필자소개>

청석학원 원장 최철호(전 경기도학원연합회장

* 학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1개학과 졸업 
 (경영학, 영어영문학, 법학, 국어국문학, 행정학, 문화교양학, 
  교육학, 청소년교육학, 중어중문학, 일본학, 관광학)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