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깊어 갈 즈음에 달이 12번 째 지구 공전을 마칩니다. 지구는 그간 365번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한바퀴 공전 합니다.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을 돕니다. 이 태양계는 우주의 중심을 향해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를 초등학교에서 배운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지구 세상 속에선 그런 느낌은 삶의 어느 공간에서도 느낄 수 없이 살아갑니다. 하지만 지구의 모든 일은 태양과 달, 지구가 만들어내는 빛과 운동, 시간과 속도 그리고 질량의 변화가 만들어 낸 무수한 변용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지구와 달, 태양계는 팽창하는 우주를 향해 질주할 뿐입니다.

우리 아파트는 김포평야 한쪽 끝인 누산리 벌판 가운데 있습니다. 크게 한 바퀴를 돌면 2시간 좀 짧게 돌면 1시간 30분 정도 됩니다. 주중에는 아파트 소공원을 아침 저녁 빠른 걸음으로 열 바퀴 도는 것이 우리 부부의 유일한 운동입니다. 주말이나 주중 저녁 한번 쯤 들길로 산책을 나옵니다. 마눌님은 어두워 무섭다며 꺼려서 밤엔 주로 혼자 나옵니다. 겨울이 되면서 퇴근 후 다시 운동하러 나오려면 추위가 느껴져 나오기가 싫지만 나가기만 하면 집으로 들어올 때 운동 후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냉기를 머금은 찬 공기와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선뜻 선뜻함이 맑은 정신을 내 몸으로 붙잡아 들이는 듯 합니다.

워낙 자주 걷는 길이라 아무리 어두워도 수로 가의 나무 하나 하나의 이름을 외울 정도입니다. 단풍나무들, 은행나무, 살구나무, 느티나무들, 꽃나무들이 있습니다. 잎이 모두 진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 위로 찬바람과 어둠이 내리면 별들이 떠 오릅니다. 이 들길에서 제일 큰 나무는 몇 그루의 은행나무입니다. 맑은 날 어둠이 내리면 먼 하늘의 별빛들이 앙상한 나뭇가지 끝마다 매달립니다.

겨울밤의 남쪽 하늘엔 베텔기우스, 리겔, 삼태성 등 시집간 딸아이가 대학생 때 가르쳐 준 오리온 자리의 별이름들이 그 나뭇가지 끝에 함께 매달립니다. 오리온 자리 중간의 삼태성 사이엔 1500광년 떨어진 오리온 성운이 있다고 합니다. 망원경으로 보이는 성운입니다. 그곳의 어느 행성은 2070일 만에 중심 별을 한바퀴 돈다고 합니다. 그 곳에선 1년이 2070일(5년 반) 일테니 인간이 그곳에 산다면 얼마나 많은 삶의 모습이 달라질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구별엔 80억 사람과 동물, 식물, 물과 육지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지구별에 존재하는 생명들의 지속가능한 순환기능이 깨져가고 있습니다. 이 원인의 한 가운데 인간이 있습니다. 인간이 존속하는데 필요한 자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갈되고, 인간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삶의 양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약탈하며 자신들의 삶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젠 경쟁이 지나쳐 자연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약탈하며 그것을 능력인 양 치부합니다.

미국, 러시아가 가진 핵탄두가 1만기가 넘고, 중국도 계속 핵탄두를 확장하고 있고, 북한 또한 여기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문명이 엄청난 발전을 한 듯 하지만 지구별의 국가 간 분쟁의 해결 방식은 외교적 미사여구 보다는 여전히 힘에 의한 방식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렇고,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힘에 의한 해결방식이 최종적인 해결방식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구별의 인간들은 더 잘살기 위해 전쟁하고 파괴하면서 자원고갈 사태를 방관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수명은 우주의 무한대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이듯 개별적인 인간의 수명은 깃털 보다 더 가벼운 것입니다. 인간에게 종족보존을 위한 DNA 복제가 없다면 인간에게 영속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종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매일 행복을 누리기 위해 시야를 확장할 상상력을 스스로 거세하여 맹인처럼 행복을 더듬질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찰나같은 일생을 보내는 인간인지라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추억의 흔적들을 돌이켜보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을 갖게되었는지 모르지만 무한대로 확장해나가는 우주의 속성을 생각하면 인간 역시 존재의 일회성은 과거 보다 미래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별에서 인간사회의 존재 가치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지켜가는 영속성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별의 생명들을 창조해 낸 우주의 실체가 무한대로 확장해나가는 빛과 속도, 운동과 질량의 지향점이 신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것이 불경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 최철호 청석학원 원장

<필자소개>

청석학원 원장 최철호(전 경기도학원연합회장

* 학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1개학과 졸업 
 (경영학, 영어영문학, 법학, 국어국문학, 행정학, 문화교양학, 
  교육학, 청소년교육학, 중어중문학, 일본학, 관광학)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