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철호 청석학원 원장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는 날이 갈수록 그 폭과 양상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외교에 대한 찬반, 일본의 핵오염 처리수 방류에 대한 여야 간의 이견, 대선후보 선호도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20-30대와 50-60대와의 격차를 보면 거의 정반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무당층의 비율이 30%를 넘어서면서 여론을 3등분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호남의 정치적 선호도 역시 갈등구조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대 북한관 역시 세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분포하고 그 성향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갈등이 없는 사회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죽은 사회일 것입니다. 하지만 갈등의 조정이나 완화를 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상실한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일 것입니다. 갈등으로 나타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세계화된 경쟁사회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학문 분야에서도 갈등치유에 대한 여러 가지 접근방법이 제시되고 있는 중입니다.

갈등은 왜 나타나는 것인가? 왜 갈등을 조정하려는데 조정되지 않고 왜 더 증폭되는가? 노사문제나 집단민원 등의 문제는 정도의 문제는 있지만 대부분 자기 이익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에 욕심을 줄이고, (공익을 위해, 대승적 견지에서)양보한다는 법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 의식의 문제에 해당하는 정치적 성향이나 대 북한관 등은 대부분 관념의 문제입니다. 어떤 분들은 주변들과 교감하며 막연하게 어느 쪽의 정서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감정을 기반한 막연한 정서는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성역처럼 작동되기도 합니다.

관념은 지식이고, 자기 정체성의 의식입니다.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을 바라다 본다는 것은, 다른 쪽의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편견에 대한 자기 방어적 지식이나 정서가 어느 정도 쌓이면 관념이 되고 그것이 다른 관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의 요인이 될 것입니다. 자기의 개성이라거나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의 총체성을 생각해보면 그 크기가 대단치 않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자신의 경우도 자신의 선호도가 쌓여서 그냥 어느 편으로 단정지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 경우는 없는지 늘 반성을 하지만 그 역시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때로 진보니 보수니 하며 성향을 이야기할 때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면 내가 진보라고 생각하거나 보수라고 생각하는 나의 관념은 어디서 온 것인가? 라는 자문을 해보면 그 지식이나 성찰이라는 것이 신문기사나 언론에서 주워들은 것들이 가장 많습니다. 기실 내 관념을 지배하는 지식의 총체도 보잘 것이 없는데 다른 쪽의 관념들을 편견이라고 몰아대는 당당함이 과연 가당한 것인지 자문해봅니다.

관념으로 인한 갈등의 구조를 조정하기 위해 소통을 해야 합니다. 소통이란 과정에서 서로의 관념이 부딪치고 상대방에 대한 논리적 허구성이나 비합리성, 적법성 등의 온갖 논리가 공방을 하지만 그렇게 쉽사리 결론이 나질 않습니다. 과거 한미FTA가 시작될 때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끝장 토론을 해도 결말이 나질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런 과정이 지식이 쌓여온 과정이고 관념이 형성되어온 과정일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편견이나 오류를 지적해서 갈등이 조정되길 바라지만 대부분의 정치적 논쟁은 마치 관념이 형성되어온 지성사가 그러하듯 무한 소급되어가는 과정으로 갑니다. 이런 현재의 갈등 구조를 해결하는 소통방식으로 지식이나 관념이 아닌 지혜를 통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는 역사가 없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비교분석한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이 그의 책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서양의 지성사가 관념과 논리의 갈등을 통해 발달해 왔다면 동양철학의 가장 큰 특징은 논쟁이나 관념에 대한 비판이 아닌 지혜를 내보이는 것으로 발전해 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자는 지식은 경쟁적 다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혜의 반대말은 거짓이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편견이나 편협함입니다. 동양의 지혜는 다른 관념을 비판하기보다 수용하거나 관조합니다. 지혜는 어느 쪽을 공격하기보다 언제나 양쪽 다 수용할 만큼의 진리를 보여 줍니다. 대표적으로 유교를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논리로 논쟁하기 보다 서로에게 지혜를 들어내 보이는 것으로 서로를 인내하며 수용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현명할 듯 싶습니다.

<필자소개>

청석학원 원장 최철호(전 경기도학원연합회장)

* 학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1개학과 졸업 
  (경영학, 영어영문학, 법학, 국어국문학, 행정학, 문화교양학, 
  교육학, 청소년교육학, 중어중문학, 일본학, 관광학)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