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단편소설 중에 '술 권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술을 마시도록 권해서 마실 수밖에 없다는 일제 치하 지식인의 고뇌를 소재로 한 내용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언어는 정화되거나 순치되어가는 것과 정반대로 퇴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문어체의 글이 독자를 만나기 어렵고, 정제된 글의 긴 호흡을 읽어낼 독자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한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 전달매체의 빠르고 축약된 정보 전달기능이 요구되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정보의 내용이 축약되고, 은어나 부호같은 동류집단의 정서를 반영하는 그런 문화적 변이 과정에 욕이 편승하며 시대적 변화 형태의 반열에 오르는 퇴행성을 보이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예컨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욕은 문화고 동년배 집단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암호 같은 상징체계처럼 작용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돈이 물질만능주의의 상징으로 대변되듯, 욕설은 정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을 대신합니다. 어떤 면에서 욕설이 더 인간적이고 정서를 더 현실적으로 대변하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필자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욕설에 익숙해지고, 동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욕설에 익숙해진 대중에게 욕설은 대중문화의 하수구가 아닙니다. 대중문화의 저항과 분노, 에너지처럼 느껴집니다. 이 정도 차원이 되면 국회의사당의 의정 단상에서 "쪽팔린다"라는 말을 들으면 청량함을 느끼는 대중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정치인들에겐 욕설이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노려 정치영역에서 의도적으로 비속어나 욕설을 사용합니다.

얼마 전에는 유력 야당 국회의원이 언론과 인터뷰 중 '국민적 쪽팔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사회자가 방송용으로 순화된 용어를 사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대 대선에선 유력 대통령 후보의 욕설이 인터넷을 통해 퍼진 적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외교 행사에서 언급된 저급한 비속어가 진실논쟁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요즈음엔 정당 현수막이 거칠고 짧은 욕설 같은 말들을 거리마다 붙이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치가 욕설을 통해 국민의 감정을 선명하게 반대편에 서도록 매일 훈련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누리던 조폭 영화에 난무하던 조폭의 언어들이 유행처럼 지나간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에게, 소위 말하는 학교폭력의 주동자인 일진들의 문화에 여과 없이 유입되어 오늘날의 학교 문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욕설 문화가 성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청소년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신 문화를 거칠고 조악하게 만드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성인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욕설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는 반면, 청소년 사이에서 욕설은 뜻이 예측할 수 없이 변이를 합니다. 어떤 경우는 그 말을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성인들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개’자를 욕으로 많이 사용하면서 언어적 친화력 때문인지 일부러 의도적으로 '개'자를 넣어 사용합니다. 최근에는 '개'자는 강조하는 접두사 정도로 사용합니다.

‘간지난다’는 멋있다의 의미로 쓰이는데 ‘개간지 난다’하면 많이 멋있다의 뜻이 됩니다. ‘개어렵다’의 반대는 ‘개쉽다’라고 씁니다. ‘개쉽다’다 보다 더 쉬운 것을 표현할 때는 ‘좃밥’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욕에 대한 찬양으로 비쳐 집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야생화에 관심이 있어서 야생화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야생화의 ‘개’자가 들어가는 이름들은 보통 정통이 아닌 아류를 뜻하는 의미로 변천한 것을 볼 수 있지만 이 경우처럼 강조를 나타내는 의미로 변천한 것은 아닙니다.

문어체에서 쓰기가 민망하지만 '좃나..'라는 남자의 생식기를 칭하는 욕이 있습니다. 이 말을 청소년들은 ‘개’자처럼 강세 접두사로 씁니다. 좀 웃기는 선생을 보고 한 여학생이 "저 선생님 좃나 웃긴다"라고 합니다. 매우 웃긴다의 뜻으로 썼습니다. 그 여학생은 '좃나'나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욕이 이런 식으로 이유 불문하고 마구잡이로 변천하듯 현대사회의 성인들의 정신세계가 욕의 의미가 변천하듯 이유 불문하고 마구잡이로 변천해 갈 것이 걱정 됩니다.
 

▲ 최철호 청석학원 원장

<필자소개>

청석학원 원장 최철호(전 경기도학원연합회장)

* 학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1개학과 졸업 
  (경영학, 영어영문학, 법학, 국어국문학, 행정학, 문화교양학, 
  교육학, 청소년교육학, 중어중문학, 일본학, 관광학)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