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철호 청석학원장 (前경기도학원연합회장)

널리 배우고 자세하게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분별하며, 독실하게 행하여야 한다.  -- '중용' --

오늘은 오전에 행사가 있어서 문수산 대신 가까운 검바위 약수터로 향했습니다. 가뭄 속에서도 들꽃들은 한쪽에서 갈증으로 몸을 태우고 또 다른 쪽에선 새로운 탄생을 위해 쉼 없이 꽃을 피웁니다. 몸집을 키우는 모과는 가을을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자연의 본능은 성숙에 있다는 진리를 깨우치는 듯합니다. 소나무 숲의 어둑한 울림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깊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율곡은 그의 저서 '성학집요'의 교기질(矯氣質) 편에서 중용을 인용하며 학문을 하는 것은 기예를 닦아서 기력이 향상되듯이 성품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의 실용적 지식 위주의 학문과 달리 학문을 통한 인간 완성이라는 성리학의 전통이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선조에게 바친 제왕학의 교본답게 왕이 신하를 다스리는 올바른 성품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퇴계 역시 율곡에 앞서 제왕학의 교본으로 '성학십도'를 선조에게 바치며 학문을 통한 심성수양론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학문을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성리학적 학문의 목적에 다다르지는 못한다 해도 중용에서 언급하는 학문을 대하는 방식은 백번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배우면서 질문하는 자세, 생각하고 분별하는 자세, 면학에 있어서 독실한 자세가 필요함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필요한 덕목인 듯합니다.

퇴계는 16세기 당시의 이기심성(理氣心性) 논쟁을 거치면서 '성학십도'를 통해 학문은 마음을 중시하고 ‘경(敬)’을 강조하는 심성수양론의 큰 줄기 차원으로 사물을 밝히고(格物), 앎을 투철히 하여(致知),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리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율곡 역시 퇴계와 같은 경(敬)을 중시한 반면 율곡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학문을 대하는 방식이 대안 제시라는 면에서 퇴계보다 구체적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율곡은 '성학집요'에서 자신의 관점에서 군주에게 필요한 덕목을 골라 '대학'의 체제에 의거해서 간결하게 정리하여 군주의 학문 목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큰 목표와 실천의 덕목을 구분하는 이런 자세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성찰을 통한 실천에 이르도록 한다면 교육의 효과가 배가될 것입니다. 뜻을 세운 학생들에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마음과 독행(篤行)을 실천하도록 한다면 더없이 훌륭한 자기주도 학습이 될 것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올바른 면학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반드시 마음을 돌이켜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루하고 반복된 학습 과정을 해야하는 청소년들에게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동기부여는 꼭 필요한 과정이고 학습의 전 과정의 노력 중 이 과정이 절반 이상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습자들은 시간적 이유나 학습 성과물에만 집착하는 이유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과정이 경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의 교육 현장에서도 자기 성찰이 소홀하게 취급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반복되는 과정인 학습의 숲 속에서 자신이 어디쯤 헤메고 있는지 모를 고행을 하고있는 학습자에게 자신의 학습 욕구와 성찰은 오랫동안 멀리갈 수 있는 필수품입니다.

사십여 년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가르치는 일이 배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런 자세가 교육자에게도 모두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움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큰 즐거움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소나무 숲으로 난 새벽 오솔길을 걸으며 정진하는 일이 이미 그 ‘경(敬)’ 속에 들어와 있는 일인지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