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철호 청석학원장 (前경기도학원연합회장)

'사무사(思無邪)'에 대하여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것이다.”
-- 『논어』 위정편, 김영주 역주 --

'思無邪'는 인문학 서적 여기저기에서 보아오던 글귀입니다. 결국 공자의 정의에 의하면 그 당시 기준으로 시는 ‘생각에 간사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천 5백년 전의 시란 무엇인가? ‘思無邪’란 말은 처음 시경에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시경에서는 말을 키우는 노나라 왕이 말을 잘 키우는데 그 이유가 思無邪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경의 가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견줄만한 동양의 문학적 근원이라면 ‘思無邪’는 사물의 본질을 정면에서 꿰뚫어 보고, 그 의도(意圖) 또한 간특함이나 옹졸함이 없어야 하고, 근원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사족을 더 붙인다면 사심이나 옹색함이 없고 대상을 진지하게 바라봄으로써 그 본질을 대체할만한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선학들께서 더 좋은 해석이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전체를 하나로 꿰거나 통일시키는 방식은 논어의 방식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仁(인)이나 恕(서), 忠(충)을 들어 “나의 도는 하나로써 관통하였다”라고 말하는 공자의 언행이 그렇습니다. 공자의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선현의 것을 정리한 것이라는 말에 따르더라도(述而不作) 하나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은 공자가 처음일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시 역시 思無邪 하나로 요약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언젠가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에 문수산을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강화 검문소 쪽 서문에서 북쪽 끝 옛날 문수 초등학교가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봉우리까지 왕복 3시간 코스를 무리 없이 천천히 완주하고 있었습니다. 숲길에 들어서니 비안개와 습한 공기 탓에 몸이 젖어 왔고, 간간이 비까지 내렸습니다. 시원할 듯한데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다시 정상 부근을 거쳐서 내려오며 앞서가던 부자와 조우를 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소년 정도의 아들이 부친인 듯한 분의 배낭 위 어깨를 잡고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배낭 끝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서 움직일 때마다 풍경소리 마냥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꾸 아들에게 짜증스러운 말투로 자신의 어깨를 잡은 아들의 손을 떼고 난간 밧줄을 잡으라고 재촉합니다. 앞이 안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산 정상까지 왔다가 내려가는 길인 것 같았습니다. 그 부자 곁을 지나칠 때, “아버님, 대단하십니다. 파이팅!”하고 내가 응원 겸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근데 의외의 답변이 내게 날라 왔습니다.

“파이팅은 무슨.... 그 정도는 아니고.....”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며 지나치십니다. 그 아버지의 미소가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마치 “네가 뭘 알아? 우리 부자의 고통에 대해서...”라고 말하는듯했습니다. 부자의 내려가는 모습을 한참을 내려다봤습니다. 아버지는 자꾸 자신을 잡으려는 아들을 떼어 놓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부자간의 마음의 간극이 서로 부딪치며 또 한편으론 서로 안타까워하는 모습으로 내게 비쳤습니다.

난 미안하기도 하고,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습니다. 순간 思無邪의 의미가 이마를 쳤습니다. 아! 본질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을 꺼내는 것은, 공감하지 못하는 겉치레 같은 말을 하는 것은 思無邪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산 아래에서 잡고 올라왔던 생각이 산 정상에서 깨우침을 주는구나 하며 혼자 쓴웃음을 웃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내 앞의 상대가 처한 삶의 맥락도 모르면서 얼마나 많은 겉치레 같은 말과 표정을 몸뚱어리에 달고 그에게 다가갔는지 반성을 했습니다. 또한 그런 것이 착한 이의 액세서리인양하는 위선은 간사함을 훈련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대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눈 사용법을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