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3반 19번 이하선!”
선생님의 호명에 당당히 대답하는 이는 81세 이하선 어르신이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태어난 해는 한·일 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 이하선 어르신이 태어난 연도는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무려 66년 차. 이 믿기지 않는 세대의 벽을 허문 양곡중학교 2학년 이하선 어르신을 만나 만학도의 푸른 학교생활을 들었다. 

“할아버지! 파이팅!"

기자가 찾아간 날은 체육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그 속에 교장선생님 아버지뻘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시원스레 공을 차고 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파이팅!"을 목청껏 지르며, 응원한다.

“영어, 수학이 가장 어렵습니다. 영어 같은 경우 요즘 아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죠. 그래서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모두 공책에 옮겨 쓰는 식으로 반복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제 방식대로 하는 수밖에요. 수학은 말할 것도 없이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무슨 과목이 가장 어렵냐는 질문에 나온 말이다. 영어, 수학을 꺼리는 걸 보니 영락없는 중2 학생이다. 반면 무슨 과목이 가장 재미있냐고 묻자 의외의 답을 한다. 학교라는 곳에 등교하는 그 자체가 재밌고 즐겁단다.

“양촌읍 유현리에서 태어나 6·25전쟁 통에 양곡국민학교를 마지막으로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늘 가슴에 학업에 대한 갈망은 있었죠. 먹고 살기에 바빠, 아이들 키우기에 여념 없다 보니 어느새 인생을 마무리할 나이가 되었더군요. 내 나이 79세가 되던 해, 그동안 내가 한 일에 대해 정리하자니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이곳 양곡중학교에 전화했더랍니다. 이 나이에 입학이 가능하냐고요”

앞으로 10년 후, 첫 발을 딛다

“수업시간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세요. 특히 역사 시간 같은 경우가 그러하죠.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는 과거의 사건이나 사고들이 현실감 있게 이해되거든요. 또한, 살아온 이야기는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이야기를 통해 많은 정보도 얻고 있어요”

같은 반 김수정 양의 말이다. 불편한 점이 없느냐고 묻자 친구 간 은어(아이들만의 언어)를 자제하게 되는데, 이게 불편한 점인지 좋은 점인지 잘 모르겠단다. 담임 이상호 교사 또한 아이들의 바른 인성에 긍정적 영향을 보이고 있다 말한다.

“적극적인 수업참여와 주저 없는 발표 등은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수업분위기도 좋지요. 어르신이 계시니 아이들이 알아서 예의를 지킵니다. 언어순화도 잘 이뤄지고 있죠. 노령으로 중도에 포기하실까 우려도 되었지만, 지금 생활하는 걸 보면 대학까지 무리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1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한 시화와 이번 해에 제출한 시화로 ‘상장’을 받았다며, 아이들이 받아야 할 것을 예우 차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 같다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은 여느 중학생과 다름이 없었다.

“아버지, 꽁지(꼴찌) 하시면 안 돼요. 일등 하셔도 안 돼요”

학업을 다시 시작한다니 4남매가 한 말이다. 꼴찌를 하면 공부해야 할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질 않고, 일등을 하면 아이들의 기가 죽기 때문이란다. 그는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가족의 응원이 컸다며, 학교에서는 학교에 전념하고, 하교 후 가정에 온 힘을 기울인다고 한다.

‘사는 동안 머릿기름 안 바르는 것, 넥타이 안 메는 것, 구두에 약 칠 안 하는 것’은 큰아이가 여섯 살 되던 해 다짐한 약속이다. 농사군 집안에 태어나 농사를 천직으로 삼고, 4남매를 키워야 하니 소박한 삶이 생활 그대로 스며들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는 할아버지, 교직원은 어르신, 담임교사는 아버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푸른 만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이하선 어르신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입학할 때 조카며느리가 선물했다는 책가방이 잘 어울린다고 하자 활짝 웃는 그의 미소에 열다섯 소년도 함께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