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철호 청석학원 원장

지난 주말에는 태풍 소식 때문인지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창가에 앉아 비 내리는 들녘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끝날 줄 모르던 폭염이 끝나고 이제 가을이 시작될 모양입니다. 매일 똑같은 모양이던 하루하루가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모습을 바꿔 또 한차례 계절의 징검다리를 건너갑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반복된 일터를 오가며 매일 때가 되면 세끼의 식사를 하며 나와 똑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산다는 것이 서로 닮은 꼴로 사는 것이려니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날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내게 운명이 정해진 이 세상에서의 시간만큼.

만일 시간이 저 들녘에 내리는 비처럼 내게 오감으로 느껴진다면, 비가 그친 들녘으로 비치는 태양 빛처럼 느껴진다면, 내 삶의 시간들을 비처럼, 태양처럼 느끼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면 아마 지금보다는 시간을 더 값지게 느끼며 살 것 같습니다.

지구상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기도 하지만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굴레입니다. 시간은 굴레이기도 하지만 고통과 슬픔을 벗어나게 하는 약이기도 합니다. 세상사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고 해결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 되는가 봅니다.

시간은 인생에서 삶을 완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재료입니다. 이 재료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개개인의 삶의 완성도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시간에 대하여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생각해 보면 내 삶에 대해, 또 타인에 대해 가졌던 기대는 길게 보면 절대로 과장되게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들녘을 비추는 햇빛과 시간에 내맡겨진 들꽃들이 언제나 과장된 몸짓을 하지 않는 이유와 같습니다.

시간은 자연이고 공간입니다. 우리 삶에서 자연이 없고 공간이 없는 시간은 없습니다. 인간 군상들 속에서 부딪치는 도회의 삶도 항상 자연과 공간을 변화시키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시간이 공평하게 똑같이 작동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시간을 느끼는 시간의 질량은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그를 만나서 보내는 시간은 쏜살같이 흐릅니다. 심지어 좋아해서 몰입한 시간은 멈춘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시간의 속도와 질량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는 지구상의 물체가 빛의 속도로 공간을 움직이면 형체는 사라지고 질량은 무한대가 되고 그 공간의 시간은 멈춘다고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열정이 어떤 대상을 향해 움직이면 속도를 느끼는 시간은 사라지고 몰입된 순간의 무게가 한없이 커짐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물리의 법칙이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적용되는 듯 합니다.

지난 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전 국민대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를 조사한 보고서에는 65-74세 노인 세대가 30,40,50대 세대에 비해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는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대부분 노년의 시대는 건강, 결핍으로 인한 우울과 슬픔의 시간을 보낼 것 같은데 사실과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런 연구는 최근 일본의 식품회사 카오가 75세 이상 111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75 이상의 노인들은 대부분 노년의 시간들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는 노인 세대는 부정적 편향보다 긍정적 편향에 집중하는 경향 때문이랍니다. 긍정적 신호에 몰입하는 시간들이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질이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시간의 길 위에서 허락된 만큼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의 질양을 다르게 느끼며 살 수 있습니다. 열정으로 멈춘 듯 살아갈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삶의 시간들은 끝이 있기에 더 의미가 깊어지는 시간들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