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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의 사는 이야기> 율동전투의 영웅 '콘라드 디 얍' 대위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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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6.06  09: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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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호 / 청석학원 원장

우리들은 해복해진 순간마다 잊는다. 누군가 우리들을 위해 피를 흘렸다는 것을.   – 프랭클린 루스벨트 –

51년 4월 22일 오후 8시 경부터 미군 3사단 65연대에 배속된 필리핀 10대대 전투단 소속부대를 포함해 중공군 44사단의 포격이 미군 3사단 전 지역으로 시작되었다. 10대대 전투단의 3개중대중 얍대위는 전차중대로 특수중대였고 왼쪽으로 보병 B중대, 오른 쪽엔 터어키 여단이 방어선을 만들고 있었다. 중공군 1차 춘계공세(4/21-4/25)는 서울을 재탈환하기 위해 일제히 시작된 것이었다.

4만 병력의 중공군 사단은 미군 3사단이 서울외곽에 새로운 방어선을 치기 전에 궤멸시키고 서울의 길목인 3번도로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10대대 오른 쪽의 터어키 여단부터 4월 22일 오루 8시부터 포격을 시작하였다. 밤 10시경부터 필리핀 10대대 전투단에선 근접 사격이 시작되고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얍대위 왼쪽의 B중대와 얍대위의 특수중대 사이로 중공군 보병부대가 파고 들었다.

자정 쯤부터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본부인 65연대와 통신이 두절되었다. 23일 03시경 탄약이 떨어진 B중대가 퇴각하고 얍대위 중대는 통신두절 상태에서 고립되었지만 오히려 고지를 점령하고 동이 틀때까지 사수하였다. 23일 정오경 65연대와 통신이 복구되어 퇴각명령을 받았지만 부하들의 시신을 수습하겠다며 다시 적진으로 달려가 시신 3구를 수습하고 고지를 사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얍대위는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얍대위가 보여준 용기와 부하의 시신을 수습해 온 전우애는 당시 중공군 1차공세를 막아내던 미군과 터어키군들의 사기진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

포천군 상리 율동마을은 지금의 연천 임진강 근처 3번도로를 접한 지역이라 중공군이 서울을 함락하기 위해서도, 미군 3사단이 무사히 병력을 철수해서 서울 외곽에 새로운 방어선을 세우기 위해서도 이 방어선을 사수하는 것이 중공군이나 우리 측 모두에게 작전상 꼭 필요한 이유였다. 지시를 받은 콘라드 디 얍 대위는 엄청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경전차로 무장하고 공격을 감행해서 고립된 부하의 시신을 수습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고지를 사수한 전과는 중공군에게도 간담을 서늘하게하여 중공군의 전사교범에도 기록되었다고 한다. 23일 정오에 65연대 병력들은 얍대위의 특수중대가 밤ㅍ새 사수한 고지에 올랐을 때 기관총 사수 아래 쪽으로 어마어마한 중공군 잔해를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얍 대위를 비롯한 12명이 전사하고 6명이 실종하였다. 중공군은 500여명의 사망자를 냈고, 미군 3사단은 이 전투의 큰 승리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무사히 미군 3사단 병력 전체를 무사히 철수시켜 서울에 새 방어선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전사 당시 대위의 나이는 30세 였습니다. 얍 대위는 탁월한 상황판단과 지휘능력을 인정 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수훈십자훈장, 필리핀에서 최고 무공훈장,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후일 맥아더는 필리핀 군인 1만명 만 내게 준다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필자는 부산을 여행하던 길에 부산UN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UN이 직접 관리하는 묘지로 현재 16개 참전국 전사자 2300여 분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생존하신 참전자들 중에 전우들 곁에 묻히기를 희망하는 분들이 이곳에 안장되고 있습니다(현재14분 안장).

묘지 사이를 걸으면서 묘비에 쓰인 누군가에겐 낯익은 이름이었을 이름이었지만 정작 내겐 낯 선 이름과 나이를 보며 감상에 젖은 적이 있었습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 젊은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17세에서 20세 사이였습니다. 6.25 때 16개국에서 전투병력 270여만 명을 파견했고, 전사자가 5만6천여명에 이릅니다. 필리핀의 경우 7420명의 전투병력을 파견했고, 120명의 사망자와 229명 부상, 16명 실종자가 있었습니다. 국군 사망자는 13만 5858명이었고, 미군의 경우 178만 9천명을 파견하여 3만 6940명이 사망하였습니다.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세계적인 대결이 이 한반도에서 일어 났습니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세계 우방의 도움으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유지에 성공했고, 그 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대열을 넘보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1988년부터 보훈처에서 ‘6.25참전용사재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년엔 7.24일부터 5박6일 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거기에 참석한 영국의 참전용사 중 한 분께서 기자와 인터뷰 중에 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기를 선택했던 당시의 선택에 대해 자랑스럽게 느낀다는 소감을 밝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인류는 태양이라는 빛에 의해 생성된 지구라는 행성의 생명체로서 인류는 공동의 인류애를 가져야 한다는 임마뉴엘 칸트의 말이 생각 났습니다.

호국 보훈의 달과 6.25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땅의 평화와 민주주의, 안녕을 지켜주기 위해 머나 먼 이국 땅에서 목숨을 버린 젊은 넋들과 우리 젊은이들의 명복을 빌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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