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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3‧22 독립만세운동 104주년 … 잊어서는, 잊혀서는 안 될 ‘그날의 함성’1919년 3월 22일, 군하리장터에서 시작한 김포지역 첫 만세운동, 김포 전 지역으로 확산 … 우리는 자랑스럽지만 아픈 그들의 ‘함성’을 얼마나 기억하는가?
양미희 기자  |  suho@cit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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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3.21  17: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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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한일합병조약의 무효와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는 비폭력 만세운동이 한반도에 퍼졌다. 더욱이 고종 독살설이 계기가 된 독립만세운동은 인산일(장례일)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춰 우리나라 전역으로 번진다.

경성(현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된 3‧1 만세운동은 중순부터 지식인, 도시노동자, 상인 층에 의해 전국 소도시로 번지기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104년 전 일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3‧1 운동’, ‘3‧1 만세운동’ 또는 ‘대한독립 만세운동’으로 부르며, 당시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열사들을 기억하기 위해 매해 3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그럼, 우리 김포지역은 어떤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는가? 혹시 김포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었던 것도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이에 씨티21뉴스는 3월 22일 김포 만세운동 104주년을 기념해 잊어서는, 잊혀서는 안 될 자랑스럽지만 아픈 그날 그들의 함성을 정리해 봤다.

   
▲ 1919년 당시 '김포 3.22 독립만세운동' 주역들.

때는 다시 1919년. 한반도 전체가 독립을 염원하고 있음에 김포 또한 동참에 나선다. 기미년 3월 22일이다. 당시 김포지역은 9개 면 중 7개 면에서 만세 시위가 진행됐는데, 조직적으로 전개된 만세 시위는 월곶, 양촌, 고촌 등 세 곳은 김포의 대표적 만세운동 장소로 꼽힌다. 우리는 이를 ‘김포, 3‧22 독립만세운동’이라 칭해본다.

‘3‧22 만세운동’의 도화선은 1919년 3월 22일 통진장날(현 군하리)을 맞아 수백 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김포지역 최초의 만세 시위를 주도했던 이경덕(1886.9.7.~1948.8.13.)에 의해서다.

   
▲ '김포 3.22 독립만세운동' 도화선을 만든 이경덕 열사.

당시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이경덕은 3‧1 만세운동에 직접 참여한 독립운동가로 바깥세상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김포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이경덕은 독립선언서와 홍보물 수십장을 일제의 눈을 피해 고향인 월곶면에 들어와 선언서를 각 면의 유지에게 비밀리에 배포했다. 선언서를 받은 성태영, 백일환, 박용희, 조남윤, 윤종근, 최복석 등은 각기 동지를 규합해 태극기를 만들고 의거할 것을 결의한다.

그리고 1919년 3월 22일 오후 2시 통진향교 앞에 집결한 그들은 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며 군하장터에 도착해 직접 제작한 태극기를 수백 명에게 나눠주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이경덕은 특히 여성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고 전한다.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월곶면 만세운동 참가자는 300명. 이를 시작으로 400명으로 확대됐다. 만세 시위가 걷잡을 수없이 번지자 일본 순사들은 만세운동 주동자와 시위자들에게 해산할 것을 겁박했으나, 우리는 응하지 않았다.

월곶면 만세운동은 28일 밤 정인교, 민창식, 당인표 등이 주도해 마을 뒷산인 함박산에서 횃불 시위로 이어졌으며, 다음날인 29일 오전 조남윤, 최복석, 임용우, 윤영규 등의 주도로 갈산리에서, 4월 9일에는 덕적도에서 월곶면 출신 임용우 등의 앞장서 일본의 강제 점령에 항거했다.

3월 22일 월곶면에서 독립을 갈구하는 봉기가 처음으로 일자 다음 날인 23일 오라니장날(양촌)을 맞아 수천 명의 군중이 참가하는 만세운동으로 확산하는 등 김포 전 지역으로 번지는 도화선이 됐다.

그리고 104년 후, 월곶면주민자치회는 그날, 자랑스럽지만 아픈 그들의 함성을 기억하기 위해 김포에서 처음으로 독립에 대한 봉기를 들었던 이경덕 열사의 기념비를 마련하고 오는 25일(토) 제막식을 준비하고 있다.

   
▲ '김포 3.22 독립만세운동'은 199년 3월 22일 당시 통진향교 앞에 모인 김포지역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확산됐다.
   
▲ 월곶면에 마련된 이경덕 열사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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