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3‧1절 특집 탐사보도> 우리는 왜, 염하(鹽河)를 염하(鹽河)라 하는가?
양미희 기자  |  suho@city21.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2.27  14:53:23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 ‘염하(鹽河)’에 대한 관심
- 고문서와 고지도 기록엔 없는 ‘염하(鹽河)’
- 김포와 강화 사이 바다가 ‘염하(鹽河)’가 된 사연
- ‘염하(鹽河)’에 대한 오해와 진실
- 그럼, 우리는 ‘염하(鹽河)’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1995년, 오래된 일이다. 당시는 광복 50주년이었다. 국토해양부는 이를 기념해 참으로 뜻 깊은 일을 계획한다, 바로 우리 민족의 자존을 되찾고자 일제식 자연 지명 정비로 당시 전국에서 33개 경기도의 11개 시‧군에서 총 27개 지명이 정비됐다.

이어 행정안전부는 2006년부터 일제강점기에 왜곡되거나 주민이 사용하기에 불편한 행정구역 명칭을 조사해 정비해 오고 있으며, 경기도 또한 같은 해부터 지역 명칭 유래 등을 조사해 4곳의 행정구역 명칭을 변경한 바 있다.

우리 김포라고 예외는 아니다. 밝힐 길이 없어 덮어 두거나, 아예 모르고 사용하거나, 아님 알고도 그냥 사용하거나 중 하나로 쓰이고 있는 일본 잔재들. 이번 <3‧1절 특집 탐사보도>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바로 김포 우리의 것을 찾는 것 말이다.

그 첫 번째로 ‘우리는 왜? 염하(鹽河)를 염하(鹽河)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 ‘염하(鹽河)’에 대한 관심

김포의 남다른 매력을 전하고 있는 ‘김포 구석구석’. 입춘이 갓 지난 2월 7일은 그 서른세 번째 이야기 ‘염하(鹽河)’에 대해 소개 한 바 있다.

이 기사를 접한 독자들은 ‘순수’와 ‘아픔’의 상반되는 관심을 보였다. 우선, 그동안 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만 알고 스치던 이곳의 ‘순수’다. 때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서해와 조강을 지나 한강을 오가며 제 소임 다하고 있는 평화를 담은 염하의 순수한 모습 말이다.

다른 하나는 염하가 염하로 불리게 된 이유다. 아니, ‘아픔’이다. 우리는 그동안 염하를 그냥 ‘염하’로 불렀다. 혹자는 ‘염하강’이라고도 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염하는 일제강점기 그들에 의해 제 멋대로 만들어진 일본식 표기다.

덮어두고 있던 내막이 송출되자 많은 독자가 각종 정보를 찾아보았을 것이다. 독자들이 찾은 그대로다.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적기라는 말처럼, 바로 지금이 염하에 대한 관심을 보일 적기다.

   
 

■ 고문서와 고지도 기록엔 없는 ‘염하(鹽河)’

염하는 한자 ‘소금 염(鹽)’에 ‘강 이름 하(河)’를 쓴다. 한자대로 풀이하자면 ‘소금 강’ 혹은 ‘짠 강’을 지칭한다. 그러나 여러 역사서나 고지도를 살피면 김포와 강화도 사이에 흐르는 지금의 염하의 명칭은 찾아보기 힘들다.

염하는 분명 바다다. 그럼에도 마치 강과 같은 모양새와 조건으로 우리 옛 어르신들은 그냥 ‘강’이라 불렀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갑곶강(甲串江)이라는 표현이 이를 증명한다. 또 조선시대 『인조실록』 인조15년 1637년 1월 22일에 이곳을 장강(長江)이라 기록했다.

반면, 연대는 확인 할 수 없지만 통진부지도는 이곳을 갑곶대양(甲串大洋)으로 표기하였고, 조선시대 문헌 곳곳에서 갑곶진전양(甲串津前洋), 혹은 초지진전양(草芝鎭前洋)의 기록이 확인 된다.

이를 밑받침하듯 1803년 화도수문 개축 후 세워진 강화도 대청교 근처에 있는 비석(화도수문개축비)과 1664년 수문을 처음 쌓았던 조복양의 기록 그리고 이은이 수문을 수리하고 지은 기문 등에서 선조들은 이곳을 바다로 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옛 기록과 지도와 문서 그리고 비석 등에 김포와 강화 사이의 물길은 강 또는 바다로 기록하고 나름의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이곳을 염하로 부르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역사가 지닌다.

   
▲ 사진= 네이버 지도 캡쳐.

■ 김포와 강화 사이 바다가 ‘염하(鹽河)’가 된 사연

때는 바야흐로 1866년 병인년이다. 당시 조선은 당파 싸움으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전염병과 재해가 끊이질 않아 백성들이 살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천주학(천주교)은 양반과 학자들뿐 아니라 백성들까지 널리 퍼졌다.

이를 지켜보던 조정은 포교활동 중이던 프랑스 주교 9명을 사형한다. 병인박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병인양요의 단초가 된다. 자국민이 처참하게 사형된 것을 안 프랑스는 그해 9월 18일 군함 3척을 띠운다.

이 군함은 서해안을 통해 한강까지 올라오고, 조선군은 이들을 막기 위해 대적하지만, 대포 등 당시 최신 무기를 사용하던 프랑스군에 한강은 물론 양화진 서강까지 내 주게 된다. 이때 프랑스 군은 조선의 수로를 측정하고 자연물을 관찰해 수집에 나선다. 그리고 해도를 완성시킨다.

당시 프랑스군이 작성한 해도에는 김포와 강화 사이 물길을 하천인 ‘Rivière’와 짠/염분이 있는 뜻을 지닌 ‘Salée’를 써 ‘Rivière Salée’로 기록한다. 한국말로 직역하면 ‘짠 강’ 혹은 ‘소금 강’이다.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조선을 업시여긴 제국주의의 거만함이라고도 했다.

프랑스는 이 해도를 가지고 강화도를 침략해 만행을 자처하는데, 이때 프랑스가 약탈한 게 바로 외규장각이다. 이외에 은괘와 우리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그들 손아귀에 들어갔다.

1년 후, 일본 해군성은 프랑스에서 이 해도를 입수한다.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해 다시 펴내는데 이 과정에서 프랑스군이 지칭한 ‘Rivière Salée’를 일본식 이름인 염하(鹽河)로 직역하고 ‘고려서안 염하지도’라 제목도 붙인다.

이 과정이 우리가 염하를 염하로 부르게 된 까닭이다.

   
▲ 2003년 강화군이 발간한 ‘강화도의 옛지도’에 수록된 지도- 한일합방 이후 1919 일본에 의해 제작됨.

■ ‘염하(鹽河)’에 대한 오해와 진실

양곡고등학교 역사 교사였던 이경수 선생은 2020년 발간한 그의 저서 『강화도, 근대를 품다(민속원)』 ‘제2장 서양의 첫 침략, 병인양요-염하와 강화해협’ 편에서 프랑스군이 이곳을 ‘짠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조선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려는 의도, 즉 제국주의의 거만함으로 보는 분석은 오해라 했다.

그 이유로 ‘Rivière Salée’는 프랑스군이 작명한 것이 아니라 강화주민의 말을 변역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강처럼 폭이 좁아 비유적으로 쓴 것이라며, 프랑스 군이 조선에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Rivière Salée’ 까지 죄를 묻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또한, ‘염하’가 일본인의 손을 타고 나왔다고 해서 미워할 필요도 없다 한다. 선생은, 어차피 우리가 쓰는 현대 한자 용어들이 상당수가 일본에 번역되어 들어 온 것들이라며,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938년 신문 기사를 예를 들었다. 이 때 ‘염하’라는 명칭을 볼 수 있었고, 6‧25전쟁 이후부터는 여러 신문에서 찾아진다고 했다. 1961년에는 대규모 해병대 훈련이 이곳에 있었는데, 해병대에서 보도자료를 냈을 테고, 거기에 염하라고 표기했을 것이라 한다.

이후, 1967년 대규모 해병대 상륙훈련이 있었고 서울에서 높은 사람이 많이 와 지켜보았다며, 그 때 훈련 명칭을 ‘염하작전’으로 정했고 신문은 그대로 보도됐다. 그러면서 ‘염하’가 퍼지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 1866년 9월 측량된 한강하구(수심단위: m) 부분도(한수당자연환경연구원 한상복 원장 소장).

■ 그럼, 우리는 ‘염하(鹽河)’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갑곶진전양(甲串津前洋), 초지진전양(草芝鎭前洋) 등 바다로 불리던 지금의 염하. 이들의 한자를 풀어보면 ‘갑곶(甲串)’과 ‘초지진(草芝鎭)’은 지명이고, ‘津(진)’은 ‘나루’를, ‘前(전)’은 ‘앞’을, ‘洋(양)’은 ‘바다’를 의미하니 ‘갑곶나루 앞 바다’나 ‘초지진 앞 바다’로 표기 가능하다.

즉, 우리 선조는 자신들이 살던 곳의 지명에 적절하게 환경을 덧붙여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다고 21세기인 지금 고어를 그대로 빌려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염하를 다르게 부를 방법이 없을까?

염하는 김포와 강화 두 육지 사이에 끼여 있는 좁고 긴 바다다. 이러한 곳을 해협이라 하는데, 다른 말로 수도(水道)·목(項)·도(濤:渡) 또는 샛바다라 불린다. 여기서 우리는 샛바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수식과는 다르게 샛바다는 순 우리말로 육지와 육지 사이에 있는 바다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앞서 선조들이 고유 지명에 주위 환경을 어울려 새로운 이름을 붙였던 것처럼 ‘김포(金浦)’라는 우리 지명에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 즉, 육지와 육지 사이에 있는 바다를 일컫는 ‘샛바다’를 어울리게 해 ‘김포샛바다’ 혹은 ‘샛바다김포’로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물론, 근대 교육이 시작되고부터 이곳에 ‘김포강화해협’이나 ‘강화해협’이란 명칭이 붙어 있지만 말이다.

   
 

2021년 신축년인 올해는 3‧1운동 102주년이 되는 해다. 또한 일제강점기로부터 국권을 회복한 광복 76주년이 되는 해다.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최근 잃어버린 우리 땅 이름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창지개명(創地改名)이라는 명목 아래 일제가 남긴 뼈아픈 역사를 되돌리고자 함일 것이다.

비단 특정한 날을 기념하거나, 나라를 움직여 일제가 남긴 지명을 몽땅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역사와 정체성을 찾아보는 건 과거 우리 선인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의 표현일 것이다.

   

▲ 1866년 9월 측량하고, 1867년 2월 발표된 한강하구 전체도면.(한수당자연환경연구원 한상복 원장 소장).

   
 

 

양미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 인기기사
1
김동석 김포도시관리공사 사장, ‘고고챌린지’ 참여
2
한강총연, “GTX-D만이 정답이다”
3
김포FC, K3 리그 귀중한 첫승 기록
4
김포 초지대교 입구까지 4→6차선 확장 추진
5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제11대 송병호 회장 취임
6
‘군하리 역사와 힐링 거리’ … 경기도 구석구석 관광테마골목 선정
7
<창간17주년 특집>정하영 시장, 공약이행 약속 얼마나 지켰나
8
김포시 교통건설국장, 어린이 교통안전 챌린지 동참
9
취업! 공공기관 도전하기… 23곳 250명 ‘역대 최다’
10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경기 서북권 자봉센터 공동대응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게시판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등록번호: 경기 아 50303 등록일: 2011.11.15 발행인·편집인: 전광희 청소년보호책임자: 전광희
주소: 경기도 김포시 사우중로 48 드림월드프라자 704호 Tel: 031)998-6161 Fax: 031)984-7117  |  이메일 : jkh@city21.co.kr
Copyright © 2004 씨티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