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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아! 슬픈 역사 6.25 70주년조 형 묵(曺 亨 默)/ 칼럼리스트, 수필가, 사회복지사 cho66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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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5  17: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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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 난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일명 6.25전쟁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전쟁은 북한의 김일성이 1950년 6월25일 새벽4시 38ܮ선 전역에서 남한으로 쳐내려오면서 시작되었다. 한반도의 공산화를 노리고 기습 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미국 중심의 민주 연합군과 소련, 중공(중국)등 공산진영이 맞서 3년 1개월간 진행된 이 전쟁으로 산업시설 등 국토가 초토화되고 사망 150만 명(연합군 37,902명 국군 13,7899명), 부상 450,724명, 실종·포로 32,838명 등 300만 명의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고 세계 22개국에서 유엔군 34만 1천명과 전쟁물자가 지원됐다. 

여기에 1천만 명의 이산가족 발생 등 국민의 삶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 곳곳은 갈기갈기 찢기고 망가졌다. 

시대적 배경을 보면 국내적으로는 1945년 해방을 전후로 좌, 우익으로 갈라져 극심한 이념갈등을 빚다가 1948년 5월과 9월 남한과 북한이 각각 민주정권과 공산정권을 세우고,국외로는 1949년 주한미군 철수와 함께 1950년 1월 극동 방위선을 <알류산열도-일본-필립핀>으로 규정,한국과 대만을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하는 트루먼 대통령의 ‘애치슨 선언’이 남침 빌미가 됐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냉전대결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고 따뜻한 남쪽의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소련 스탈린의 야욕이 맞아 떨어져 공산주의자 김일성이 소련(현 러시아)과 중공(현 중국)의 모택동을 등에 업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 소련은 탱크 등 전쟁 장비와 물자, 중공은 70만 대군을 지원했다. 에치슨 선언 5개월만으로 중국의 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 군대 파병이 용이 했던 점도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전쟁을 3일 만에 끝낸다고 호언장담했지만 3년이 넘게 이어졌으며 급기야 유엔이 중재에 나서 전쟁 발발 3년만인 1953년 7월 휴전선언으로 그 막을 내렸다. 전쟁 후 우리는 서방 기자의 ‘쓰레기통에서 꽃을 피울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유엔과 미국의 경제지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재건, 분단 60여년 만에 국민소득 3만 불의 세계 12대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를 놓고 세계인들은 “역사에 없는 기적을 이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긴 휴전의 아픔을 70년째 이어가고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단 기간 내 비약성장으로 일약 중진국 대열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유능한 국가 지도자, 근면 성실한 국민성, ‘자식만큼은 꼭 성공 시키겠다’는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그 바탕이 됐다. 이 같은 압축성장의 효과는 경제발전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산업화도 함께 이뤘다. 하지만 양적 성과주의에 집착하다 보니 풍요 속의 빈곤, 즉 깊은 정신적 그늘을 만들어 사회 곳곳에서 극심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이념 갈등, 여·야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노사(勞·使) 갈등 등 사회 요소요소마다 갈등이 만연하여 국가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과 학자들은 ‘공정 공평원리가 무너지고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라며 ‘공동체의 붕괴위기, 나아가 원한(怨恨)의 사회로 폭주가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어언 70년.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지 못하고 고통의 질곡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 중심에 상이군경, 미망인, 유가족, 이산가족이 있다. 이들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산화한 국가 유공자 및 그 유가족들을 보살피고 보상하는 것은 국가의 제일의 책무”라며 최고의 예우와 보상을 강조했지만 정치인들의 허언일 뿐 아직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골드스타 패밀리(전사자 가족)만큼 우리의 자유와 안보를 위해 이바지한 사람은 없다.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며 이들을 존중하고 이들 앞에 겸손해야한다.”고 한 말을 우리 위정자와 국민은 가슴에 되새겨야 한다.
 
열악한 우리의 보훈정책과 국민적 관심은 OECD 평균치에도 크게 못미처 아직도 유자녀,상이군경 중 유족연금이나 위로금을 못 받고 절규하는 보훈가족이 수없이 많다. 더욱이 전쟁미망인들은 졸지에 가장인 남편을 잃고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힘들어 자녀 교육은 엄두도 못 내고 빈곤을 대물림해왔다.
 
또 아버지와 남편이 나라를 대신하여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것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은커녕 오히려 아비 없는 자식이란 편견과 홀대 등 이중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고 현재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현재 보훈병원에서 총상의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는 상이용사와 고엽제 환자 등 부상 후유증으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군경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다.이뿐 아니다.아직도 유해를 찾지 못한 채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유가족, 북한과 인접한 접적지역(接敵地域 )및 적(敵)가시지역에 살며 갖가지 불이익과 불편을 겪고 있는 농·어민 등 분단의 고통과 불이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국민은 수없이 많다.
 
국가는 지금이라도 선진국처럼 이들에게 합당한 예우와 유·무형의 보상,그리고 생활비 지원을 해야 한다.또한 현충일 추념식과 6.25행사도 의례적인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말고 호국보훈의 달로 정한 6월 한 달 내내 국가를 위해 스러져간 호국영령들을 온 국민이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고 기리며 보훈가족을 따듯하게 위로하고 보살피는 사회적 분위기 정착이 시급하다.

그래서 유가족과 전상자들이 긍지를 갖도록 해야 한다.호국과 보훈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이며 지난날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과 내일을 이어가는 주춧돌이 되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보훈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각 급 학교마다 그 학교출신의 참전자 이름을 본관 건물에 걸어놓고,참전자의 집에도 ‘국가유공자의집’이라는 명패를 게시하고 예우한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이들을 존중. 존경하는 문화를 최우선에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내가 다섯 살 때 한국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보훈가족으로 전사자 가족의 애환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낙동강전투에서 졸지에 남편(경찰)을 잃고 두 살짜리 남동생 등 남매를 키우며 평생 뼈골이 부서지도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장모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온다.    
 
나에게도 6.25 전쟁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전쟁이 터졌는데 우리 집은 서울의 서북부지역, 북한 땅 황해도 개풍군과 8~10km에 인접한 시골마을로 전쟁이 시작되면서 북한 비행기의 왕래가 잦았다.
 
이들 비행기들이 지붕 위를 오가며 커다란 굉음과 함께 폭격을 할 때마다 어린 나는 너무 무섭고 겁이나 부엌 한구석에 쌓인 가랑잎 더미에 몸을 숨기고 뒷마당에 파놓은 방공호에 몸과 얼굴을 파묻기도 했다.
 
피난길에 오르면서 가마솥에 볶은 쌀가루를 보따리에 싸 둘러매고 마치 개선장군처럼 소잔등에 올라타고 많은 인파속에 묻혀 갔던 아픈 추억도 있다. 피난 생활 중 사람들이 빼곡히 모인 저녁 자리에서 어린 소년이 유행가(현재의 트로트)를 멋지게 불러 칭찬과 박수를 받고, 평택 야산서 뼈 골절에 좋다는 산골을 캐러 어른들과 산을 헤매고 다닌 기억도 아련하다.
 
비행기 폭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지가 찢기고 부러져 여기저기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절규와 탄식 등 참혹한 전쟁터의 잔상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전쟁의 참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결과만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 전쟁으로 우리민족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동족이 남북이 갈리는 분단의 아픔을 유산으로 받았다.
 
이로 인해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난 현재도 동족이 민주·공산 진영으로 갈려 밤낮없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슬픈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는데 백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도 있다.
 
다시는 이 땅에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력을 튼튼히 다지고 후손들이 하루속히 통일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
<외부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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