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는 추위에 강하며 노지에서 월동이 가능한 여러해살이다. 낮의 길이가 12시간 이하상태에서 꽃눈분화가 이뤄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인 서정주는 국화를 옆에 두고 그리도 절절히 읊조렸나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이번 씨티21뉴스 인터뷰 주인공은 국화와 무척이나 닮은 예술인 유매희 씨다. 그는 현재 국악소통공간인 예술하우스(How's) 대표로 국악과 난타 그리고 댄스를 접목해 우리나라 공연문화의 틀을 바꾸고 있다. 얼마 전부터 새로운 장르를 합류해 예술계의 다원화를 구축하고 있는 그는 어디서 이런 참신함이 나오는 걸까. 그의 솔직, 담박, 쾌활함에 그 정답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시작한 늦은 판소리. 제겐 값진 경험이었죠”

한없이 곱디고운 10월의 가을. 유매희 대표를 보는 순간 자홍색 국화가 떠올랐다. 아담한 체구에 풍기는 이미지가 꼭 그러했다. 우선 자신의 소개를 부탁하자 망설임이란 1도 없다.

“국악인 판소리를 전공했습니다. 전공이 판소리이다 보니 교육대학원 수료도 그와 관련해 판소리 관련 교육활동이나 개발에 무게를 두었죠. 그래서인지 지금 하는 일도 교육과 관련된 일이 대다수입니다. 물론 공연도 빈틈없이 준비 중이죠”

그는 오는 12월 김포아트홀에 있을 공연 준비로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단다. 국악소녀였던 그가 어떻게 공연계에 몸을 담게 되었을까. 그것도 여러 장르를 접목시킨 다원예술을 발굴하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그 사연이 궁금했다.

“판소리로 대학을 갔지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판소리를 처음 접했으니까요. 어려서부터 판소리를 섭렵한 친구들과 차이는 엄청났죠”

간절히 원한다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판소리를 하다 보니 자신에게 한계점을 발견한 그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 평소 교육활동이나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교육대학원 진학은 좀 더 폭 넓게 국악을 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댄스(Dance)와 두드림(打:타)가 어우러진 공연. 상당히 매력적이죠”

대학 졸업 후 그는 ‘난타’라는 신기루를 만난다. 1분의 망설임도 없이 난타 강사로 등록하고 바로 채를 잡는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20대 중반. 그 후인 2011년 그는 서른을 기념해 독립한다.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난타와 함께 자신의 색깔을 입힌 ‘댄스앤타’를 준비한다.

“댄스앤타는 타악 공연으로 댄스(Dance)와 두드림(打:타)가 어우러진 신조어입니다. 지난 2012년 이 장르로 첫 공연을 했죠. 타악 퍼포먼스 안에서 현대 사회에 필요한 문화예술 코드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는 물론 아마추어 코드에 맞게 연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듣도보도 못한 장르로 공연을 한다니 어설픔은 예쁘게 봐 줄 수 있다 치더라도 관객 동원은 예상 못 할 상황이었다. 회원들이 연습한 결과를 무대에 올리는 거라지만 그들의 어깨를 처지게 할 것 같아 불안했다는 유 대표. 그의 불안은 한 방에 슝~ 날아갔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이 치유해 주는 법인가 봐요”

많지 않은 나이에 예술하우스 대표로, 다원예술의 선각자로 앞장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햇수로 7년 차.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이고, 당황스런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을 터. 그에게 가장 어려운 점을 묻자 이번에도 망설임도 없다.

“사람이 가장 어렵죠.. 예술하우스를 오픈하고 내놓으라하는 강사도 배출했으니 이정도면 저 자신이 기특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실력도 없던 강사가 마치 이 분야에 전문가인 것처럼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처음으로 인생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장르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액션을 보여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상황을 접할 때 오히려 자신이 민망해 얼굴이 붉어지더란다. 살다보면 이런 일은 한두 번 겪는 게 아닌데 그에게 있어서 그런 배신은 너무도 치욕적이었나 보다.

“하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이 치유해 주더라고요. 60대 여성분이었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전업주부죠.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했던 그런 분이요. 난타를 배운다고 남편께 이야기하자 ‘그런 거 배워 뭐 할 거냐’며 무시 아닌 무시를 받으면서도 꾸준하셨습니다”

결과물을 발표하는 날. 막이 내리고 무대 뒤에서 숨을 고르던 회원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바로 무시 아닌 무시를 하던 남편의 응원메시지.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던 회원과 그의 남편은 인생의 1순위는 바로 ‘난타’라 한다.

“예술을 융합장르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처음 그가 독립해 준비한 공연은 ‘난타 이야기’, 두 번째 공연 역시 난타를 주제로 한 ‘한여름 밤에’다. 세 번째로 이뤄진 공연이 앞서도 이야기한 ‘댄스앤타’다. 이번엔 여기에 마술이 함께한다.

“12월에 있을 김포 공연은 마술과 난타 무용극이 함께하는 무대입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뱀파이어와 구미호가 만나 펼치는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가족 체험극이죠. 구미호는 조선시대에나 등장하죠. 그 이전에는 '흰여우' 혹은 '천년묵은여우'로 불리게 됩니다. 여기에 피를 탐하는 비슷한 습성인 뱀파이어 등장하죠”

정말 재밌는 상상력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뱀파이어와 여우여신이 만나 구미호가 탄생하는 설정을 둔다. 각각 하나씩만 보아도 오감이 호강할 터. 여기에 어린이들이 혹할 마술과 두드림, 그리고 무용까지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니 참으로 흔치 않은 일이다. 공연의 핵심은 스토리 구성과 무대 디자인 그리고 연출인데 유 대표는 이 몫까지 거뜬히 해 낸다. 거기에 출연까지. 그런 그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공부가 잘하는 딸보다 재주가 있는 딸이 되기를 바라셨죠. 국악을 전공하게 된 것도 아버지 영향이 컸습니다”

그래서일까. 유 대표는 재주가 참 많다. 많아도 보통 많은 게 아니다. 그는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며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여러 장르를 접하게 하는 것이 결국 아이가 성장하는 밑거름이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 섭렵한 여러 서양 악기들과 한국 음악이 만나 선보이는 환상의 콜라보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예술이란 무엇이냐 묻자 이 또한 주저 없이 ‘대중성’이라 한다. 결국, 예술 행위를 하는 자신이 즐기고, 남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 일축한다. 대중과 함께 놀다보면 그 안에서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을 수 있단다. 그리고 대중이 원하는 것을 늘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이채롭다.

그와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덧 두어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종일이라도 이야기하고 싶은 그는 가을이면 곁에 두고 싶은 국화와 같다. 자줏빛 국화가 사람으로 환생한다면 그와 같을까. How(어떻게)‘s를 늘 고민하고 새로움을 즐기는 유매희 대표. 예술을 예술에 국한되지 않고 융합예술로 관객과 가까이 다가서고 싶다는 그의 손에는 오늘도 난타 채가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다.

* 다음은 지난 예술하우스 작품 '틱톡이'
https://m.youtube.com/watch?feature=share&v=UFLYHr4ZW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