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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한국인, 자부심 있는 김포인, 자랑스런 줌머인”[인터뷰] 재한줌머인연대 운영위원장 로렐 씨
양미희 기자  |  suho@cit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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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3  17: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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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가득 머금은 더위를 무더위라 한다. 장맛비가 물러간 후 무더위는 우리나라 여름날의 단편이다. 무더위가 지나면 찜통더위가 기다린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삼복(三伏)을 정해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게 했나 보다.

평화. 평화란 이런 모습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무더위가 시작돼도 복날 보양식 한 사발로 거뜬히 이겨내는 일상. 그 속에서 단순하지만 편안한 삶.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바로 평화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 그 일상을 꿈꾸며 모국으로부터 탈출해야 했던 이들이 있다. 바로 난민이다. 세계인권선언 14조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 망명을 요청하고 망명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현재 김포에 살고 있는 줌머족 난민은 미성년자를 포함해 123명. 이중 난민으로 인정 받은 수는 98명이며 나머지 25명은 소송 중이거나 심사 중인 사람들이다.

이번 씨티21뉴스 인터뷰는 방글라데시에서 뱅갈인의 탄압을 피해 우리나라를 찾은 줌머인 로렐 씨다. 재한줌머인연대 운영위원장인 로렐 씨는 현재 김포시외국인주민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평화롭기에 방긋 웃을 수 있다는 그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이나니 입니다”

이나니. 로렐 씨의 한국 이름이다.

“대외적인 이름은 차크마 나니 로렐입니다. 그래서 한국 이름을 지을 때 가운데 있는 ‘나니’를 그대로 사용했죠. 한글 이름입니다. 2011년 11월 9일. 드디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죠. 그 날이 저의 두 번째 생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이나니, 로렐 씨. 그의 아내와 아들은 2003년 입국했다. 아들은 현재 양곡고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들이 공부를 잘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느 고3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큰 웃음으로 답한다.

기자와 만나기 전날 그는 모든 일을 접고 서울행을 택했다. 지난 6월 뱅갈족에 의해 줌머족 마을 4곳을 공격 받아 전소되고 사망자도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 사건은 계속 발생되고 있다며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97년 기준으로 게릴라 단체와 방글라데시 간의 협상이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정부, 군대, 뱅갈족이 조직적인 학살이 13번 있었습니다. 같은 곳에 반복되죠. 평화협상 이후 20회 정도 예전과 다른 약한 학살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몇 백 명씩 학살이 자행됐죠”

학살은 줄었지만 경제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단다. 또한, 줌머족이 도망가면 뱅갈족이 그곳을 정착하기 때문에 줌머인은 그 땅에 더 이상 돌아 갈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인종 청소가 되고 있는 현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단다.

“종교, 인종차별, 민주화 항쟁이 저를 이곳에 있게 한 이유죠”

난민의 대우가 좋은 호주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도 많은데 왜 우리나라에 망명 했는지 궁금했다. 그것도 김포에.

“한국을 택한 첫 번째 이유는 종교입니다. 방글라데시 불자 소수민족인 줌머인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불교나라로 알려졌습니다. 종교차별을 받은 저희로서는 한국에 끌렸죠. 그러나 이 땅을 밟은 후 한국이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불교나라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끝에 늘 함박웃음을 짓는 로렐 씨. 그가 우리나라에 입국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인종차별이 없어서란다. 어려서부터 방글라데시 주류 민족인 뱅갈족에게 인종차별을 받았던 줌머족. 뱅갈족은 왜 그들을 핍박했을까. 바로 코의 높‧낮이가 이유란다.

“방글라데시는 뱅갈족은 인도 아리안 족에 속해 줌머족에 비해 코가 높습니다. 또한 피부색도 그들과 달라 많은 차별을 받았죠”

로렐 씨는 방글라데시에서 원숭이 취급을 받다가 한국에서 사람대접을 받으니 자부심이 생긴다며 다시한번 크게 웃는다. 한국을 제2의 모국으로 선택한 마지막 이유는 민주화항쟁이다. 놀라웠다.

“그 당시(80년대) 방글라데시도 군사정부였습니다. 방글라데시 항쟁도 그 무렵 시작됐죠.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과 방글라데시 인권수준은 다름이 없었죠. 한국에서 민주화 항쟁이 성공했다는 사실은 탄압받던 저희 줌머족으로써는 정말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이장 선거를 하면 도전해 볼까 합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로렐 씨. 당시 난민문제에 맞닥뜨린 한국 정부는 난민에 대한 정보도, 제도도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난민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고용허가가 나지 않아서라는데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된다. 그가 정착한 양곡 주민의 반응은 더욱 냉담했다. 당시 외국인에게도 집을 빌려주지도 않았단다.

“지금은 개발로 주민이 많이 떠난 상태입니다. 원주민이 이동을 한 거죠. 저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양촌 지역 원주민은 이제 우리(줌머인)라고 합니다. 앞으로 이장 선거를 하면 도전해 볼까하는데 가능성 있겠죠?”

그는  넉살 좋게 아재개그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럼 이곳에 살면서 좋은 점은 무엇일까. 로렐 씨는 줌머인은 이곳에서 자신이 죽을 거라 생각 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한다.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안전입니다. 이정도면 완전히 안전한 나라죠. 저희가 살던 방글라데시는 아침에 집을 나서면 무사히 들어올 수 있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밖에 나가면 경찰, 군인도 무서웠죠. 법적인 제도도 없는 상황에서 인종 간 갈등도 있었기 때문이죠. 삶에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난민들은 완전한 해방감을 느끼며 살고 있죠”

우리나라 줌머인 중 약 80%가 양촌에서 새 둥지를 틀고 있다. 줌머인이 김포, 그것도 양촌에 정착한 이유를 묻자 그는 자신들의 고향과 매우 닮아서라고 한다.

“줌머족이 터전은 방글라데시 산악지대인 치타공입니다. 그곳은 산과 산 사이에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죠. 양촌 지역은 치타공과 매우 똑같습니다. 조금만 나가면 논과 밭이 있어 더욱 좋습니다. 서울을 자주 나가는 편인데 오후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에 스치는 김포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이런 이유로 제가 이곳을 떠날 수 없어요”

“난민도 김포시에 세금 내는 똑같은 시민이죠”

재한줌머인연대 운영위원장, 법무부 난민전문통역인,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공동체지원팀. 모두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그만큼 하는 일도 많은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저는 지식인도 아니고, 난민 관련 전문가도 아닙니다. 다만 김포 시민으로서 줌머족의 어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정착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민족 정체성을 포기 하지 않고 똑똑한 한국인, 자부심 있는 김포인, 자랑스런 줌머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포시민에게 ‘난민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알리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준비했다는 듯 막힘없이 이야기 한다. 난민은 똑같은 김포 시민이라고.

“아인슈타인도 난민이었습니다. 그는 ‘난민이 올 때는 보따리만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함께 가지고 오는 건 문화의 다양성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난민들은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오죠. 김포는 평화문화1번지를 외칩니다. 이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 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멋진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떳떳한 국민이며, 김포시에 세금을 내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고3 수험생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학부모다. 다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건 제2의 모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무더위가 한창인 7월의 한복판. 로렐 씨는 오늘도 소수민족의 인권보호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가 줌머인이어서가 아니다. 그가 난민이어서가 아니다. 그가 인권운동가라서가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지구촌 지붕아래 한 가족으로써 핍박이 전부로 알고 있을 그들에게 평화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다.

   
지난 7월 9일 줌머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시위에 참여한 로렐 씨(가운데 흰옷). 아시아경제 캡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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